그중에서도 오디오 마니아인 주인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음악을 듣고 싶어' 공들여 세운 최신 시설에 찾아가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던 시간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첫 손님으로 들어가서 사람 없는 시간을 온전히 즐겨서일까? 층고를 높이고 오직 음악을 잘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 구석구석까지 사운드가 빈틈없이 도달하는 것이 느껴졌다. 입장료가 싼 편은 아니었지만, 커피나 다과 등을 추가로 제공하지 않는 대신 음악 외의 소리가 없는 환경이라 만족도가 더 높았다. 비가 온다면 음악이 더 또렷하고 풍성하게 들릴 것 같은 느낌에 소나기가 온다던 일기예보창을 한참 들여다보았지만, 아쉽게도 비는 오지 않았다. 건물 곳곳에 난 통창 앞에서 구름이 서서히 움직이는 파란 하늘과 흐르는 강, 어딘가로 달려가는 차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 시간은 그 자체로도 충분했다. 음악이 잠시나마 다른 세계로 여행을 다녀오게 해준 기분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이 좋은 음악을 들은 장소가 개인 공간이거나 유료 시설들이라 내 일상에서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오디오가 하이엔드급 아니더라도
맘 편히 감상할 수 있는곳 많았으면
사실 내 일상에서 음악의 질은 꽤 괜찮은 편이다. 집에서는 세운상가 장인표 진공관 스피커를 주로 사용한다. 진공관 스피커는 50여년 경력의 세운마이스터 류재용님의 작품인데, 작고 앙증맞은 크기인데도 모양과 소리는 물론 블루투스 지원 기능까지 뭐 하나 빠지는 구석 없는 짱짱한 스피커다. 가격 대비 손이 너무 많이 가서 잘 만들지 않으신다는 걸 겨우 사왔다니 더 소중하다. 류재용 마이스터의 진공관 오디오 제작 기술은 최근 젊은 디자인 회사 '어보브 스튜디오'의 디자인과 만나 새로운 'KNOT' 스피커로 제작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TV도 소리를 제대로 방출하는 오디오 시스템을 별도 연결해 시청해 왔기에, 오디오 음질 차이가 이렇게 갑자기 느껴지는 건 의외의 발견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호사를 경험한 귀는 출퇴근길의 좋은 파트너였던 애플 뮤직의 업그레이드된 공감 음향마저 튕겨내는 중이다.
그제서야 음악을 좋아하는 선배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음악 감상을 위해 집에 나름의 장비를 갖춰두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혼자 음반을 고르는 시간을 유일한 낙으로 느낀다는 선배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집에서 음악을 듣는 것이 영 녹록지 않은 눈치다. "호젓하게 음악을 들을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는 선배의 하소연은 아파트에 산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의 단독주택으로 이사간 누군가는 생활의 편의성은 좀 떨어지고, 관리해야 하는 것도 많아 힘들 때도 있지만, 층간 소음 걱정 없이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크게 틀어놓고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사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그렇게까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원할 때 아무 때나 집에서 마음 편히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음악의 힘은 일상 잠시 잊도록해줘
그 힘에 기대어 이 힘든 역병의 시대
견디며 지나갈 수 있는 위로가 된다
공동 주택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인 요즘,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좀 더 좋은 음질의 음악을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더 생긴다면 좋겠다. 층고가 높고 소음에서 자유로운 공간이라면 오디오가 하이엔드급이 아니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음악 감상을 위한 해설이나 지식 전달도 좋지만, 음악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음악 전문 감상실이 아니더라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주변의 작은 가게들을 찾아가는 것도 괜찮다. 음악의 힘이란 일상을 잠시 잊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해 줄 정도로 셀 때가 있고, 그 힘에 기대어 이 힘든 역병의 시대를 견디며 지나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될 테니까.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