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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대표적인 '가짜뉴스' 피해자로 유우성과 홍가혜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간첩과 허언증 환자로 구속 기소돼 고통을 겪었다. 둘 다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평범한 삶은 철저히 망가졌다. 국가기관은 두 사람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언론은 여기에 동조함으로써 시민의 삶을 유린했다. 그럼에도 언론사 보상책임은 500만~1천만원에 그쳤다. 이로써 두 사람이 입은 피해는 회복된 것일까.

'가짜뉴스'는 의도하지 않은 가운데 사실을 잘못 전달하는 '오보'와는 다르다. '가짜뉴스'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팩트를 왜곡하는 범죄행위다. 이로 인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나아가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관용을 베풀기 어려운 공공의 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자유도 좋지만 무책임한 보도로 인한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여론을 담고 있다. 


가짜뉴스는 의도적 팩트왜곡 범죄
개인 피해·공동체 파괴 '공공의 적'
여당이 도입 하려는 이유도 이때문


그렇다 하더라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게 한둘이 아니다. 첫째 허위 조작 보도를 어떻게 규정할지다. 또 자의적 판단으로 인해 비판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 과잉 입법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우리 형법은 명예훼손과 모욕죄를 규정하고 있다. 반론권, 정정보도 청구권도 있다. 미흡하지만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보상과 구제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현행 법을 보완하면 될 일인데 과잉 입법으로 인한 위헌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정의당과 진보 언론단체까지 반대하는 현실도 무시하기 어렵다. 관훈클럽, 외신기자클럽, 세계신문인협회, 세계언론인협회까지 한국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왜 반대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자유는 보편화된 개념이다. 우리 헌법도 이를 명문화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피 흘려 온 역사다. 하지만 언론자유와 시민권리가 충돌할 때 국가가 어느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는 쉽지 않은 질문이다. 언론자유는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허용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개혁도 이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 해도 언론의 비판 기능을 위축시키고, 언론이 정치와 자본권력 통제 아래 놓인다면 신중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부작용을 꼼꼼하게 살피는 게 우선이다. 반대 여론도 수용하고 설득하는 절차를 밟을 때 언론중재법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는 선한 의지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임대차 3법은 좋은 예다. 민주당은 임대인 보호라는 선한 의도에서 입법했지만 결과는 서민에게 독이 됐다. 반대 여론에도 귀 기울이고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시민권리 초점 법 보완하면 될일을
과잉입법 소지… 선뜻 동의 어렵다


언론중재법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반대하는 이들을 수구로 단정할 게 아니라 우려되는 부작용을 시뮬레이션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수적 우위를 앞세워 강행 처리한다면 입법 폭주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덧붙이자면 언론중재법은 시민의 권리를 지키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부에서 우려하듯 정치적 목적을 지닌 '재갈 물리기'가 된다면 공감을 얻기 어렵다. 언론도 이번 기회에 '기레기(기자 쓰레기)'로 전락한 현실을 인식해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 팩트에 기초한 객관적 보도와 기계적 형평을 떠난 합리적 비판에 답이 있다. 시민들 또한 언론이 비판과 견제 기능에 충실할 때 권리도 확장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동아일보는 2017년 3월6일 "유우성이 간첩행위를 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고, 간첩 혐의 또한 무죄가 확정되었기에 바로 잡는다"는 정정보도문을 냈다. 첫 보도 뒤 3년 만이다. 무책임한 보도와 인색한 정정보도 관행은 언제든 언론중재법을 필요로 한다. 유씨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언론 자유 침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상액을 5배 올리는 건 더 진실에 가깝게 쓰라는 것이다. 기사를 제대로 썼으면 5배가 아니라 10배라도 물어낼 일이 없다"고 했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목소리를 감안하되 언론중재법 처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