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연하고 비장하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거리를 검은 옷차림에 검은 우산을 든 사람들이 정처 없이 걸어다닌다. 거리두기 4단계 연장에 항의하는 자영업자들이 2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 인도에서 벌인 도보시위 풍경이다. 검은 옷, 검은 우산은 코로나19 암흑에 갇힌 자영업자의 상징일테다. 시위자는 수백명에 불과했지만, 가게 앞에 검은 우산을 펼쳐놓거나 SNS에 응원댓글을 올린 자영업자들은 똑같은 심정으로 시위 현장에 있었을 것이다.
정부는 거리두기 4단계를 2주 재연장하면서 오늘부터 음식점 영업시간을 오후 10시에서 9시로 단축한다. 대신 저녁이라도 백신 접종 완료자 2명이 포함되면 4인 식사를 허용한단다. 자영업자에게 저녁 영업시간 단축은 치명적이다. 인원제한 완화는 20%가량에 불과한 접종완료 현실상 실효성이 없다. 병주고 약주는 셈인데, 약이 약 같지 않으니 약이 바짝 오른다.
무엇보다 정부는 방역 조치로 거둔 효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두 달째 4단계 거리두기 조치와 영업시간 단축, 인원제한에도 불구하고 델타 변이 확산세는 멈출 기미가 없다. 방역 실패는 분명한데, 그때 마다 희생을 요구받아 온 국민은 이제 생존을 걱정한다. 간호사들이 파업을 예고하고, 자영업자들이 폭우 속에서 검은 우산을 썼다.
방역 실패는 전적으로 백신 부족 탓이다. 작년에 확보해 올 봄에 충분히 접종했다면 '위드 코로나'도 가능할 수 있었다. 지난 주말 루마니아가 모더나 백신 45만회분을 한국에 기부한다는 보도가 뜨자, 정부는 서둘러 기부가 아니라 백신 스와프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백신 스와프라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우리와 같이 접종 후진국인 루마니아에게 빌려야 할 정도로 백신 기근이 심각하다는 반증 아닌가.
정부 내에서도 백신 접종률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위드 코로나'로 방역정책을 수정할 것을 검토 중인 모양이다. 중증 환자 치료에 집중하면서 코로나와 함께 사는 그날이 빨리 와야 한다. 신속한 백신 공급이 관건일테다.
백신 기근이 초래한 나비효과라 해도 이제와서 루마니아 백신이라니 얼척없다. K방역이 검은 우산을 쓰고 루마니아 백신을 맞을 판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