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염자부담원칙' 쓰레기종량제 정책의 취지는 오염물을 발생한 사람이 그 처리비용을 부담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했습니다. 1995년 쓰레기종량제 봉투가 도입되기 전. 동네 풍경은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담긴 검은색 봉지가 여기저기 보기 흉하게 쌓여 미관을 찌푸리게 했었죠.
우리 삶이 편리해질수록 늘어만 가는 쓰레기를 감당하다 못해, 정부는 종량제 봉투를 생활 속에 도입했습니다. 지자체마다 규격에 맞는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넣어야만 '처리'해주겠다는 일종의 선언입니다.
하지만 쓰레기종량제 도입 이후 쓰레기 문제는 해결됐을까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역의 이야기들이 뉴스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해결은커녕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 자명합니다.
가평군 26년간 '처음 가격 그대로'
도민 부담 비율 10~40% 내외 불과
상황이 이런데, 경기도 지자체의 3분의1이 10년이 넘도록 종량제 봉투 가격을 인상하지 않은 것으로 경인일보 취재결과 확인됐습니다.
심지어 단 한 차례도 인상하지 않은 지역들이 있어 사실상 오염자부담원칙을 원칙으로 한 쓰레기종량제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됐다는 지적입니다.
예를 들면 가평군의 20ℓ 일반쓰레기봉투 가격은 400원입니다. 처음 도입됐을 때 가격이 400원이었는데, 26년간 한 번도 올리지 않은 것입니다.
안양시는 어떨까요. 현재 20ℓ 일반쓰레기봉투는 550원입니다. 첫 도입 당시 330원이었던 게 2년 뒤 60원을 올려 390원이 됐고, 6년 뒤 140원을 올려 550원이 된 뒤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26년간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해본다면, 종량제 봉투값은 요지부동인 셈입니다.
쓰레기봉투의 값을 받는 것은 단순히 봉투를 제작하는 가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쓰레기를 '수집·운반·처리'하는 비용 모두가 포함됐습니다.
그래서 오염자인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실제로 경기도 내 도민들이 부담하는 비율은 10~40% 내외에 불과합니다. 환경부도 주민들이 처리비용을 100% 부담하는 것이 정책 취지에는 맞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오염자부담 원칙… 도입 취지 무색
가격 오를 땐 '무단 투기' 부작용도
쓰레기 문제는 생활과 밀접 '숙제'
그렇다면 지자체는 왜 쓰레기봉투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을까요.
청소예산 재정자립도는 지자체가 자체 수익을 통해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비율을 말합니다. 청소예산의 가장 큰 수익원은 쓰레기봉투 판매 금액입니다. 문제는 종량제 봉투 가격을 올리면 아예 봉투를 사지 않고 무단 투기하는 사례가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단투기에 따른 처리비용이 역으로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는 셈이죠.
여기에 최근 들어 쓰레기를 처리할 공간이 부족해 처리 비용 자체가 상승하면서 지자체들은 봉투값을 올려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상에 따른 저항이 만만치 않아 지자체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제 쓰레기 문제는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해결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심각한 기후변화로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피부로 체감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요. 단순히 쓰레기봉투 가격 인상으로만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환경보호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토론해봅시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