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조 개국(1392년) 당시 전국 인구는 554만여명에 불과했다. 이후 정국이 안정되고 식량 생산이 늘면서 중종 14년(1519년)에는 1천46만명으로, 130여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인구밀도가 높아진 한양의 토지·주택 가격도 덩달아 폭등했다.
눈치 빠른 사대부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세를 주고 몇 채씩 사들이는 이른바 '갭(Gap) 투자'로 짭짤한 차익을 봤다. 주택난이 심화하자 조정은 임대주택을 건설했다. 영조 때는 '집세 때문에 못 살겠다'며 감면을 바라는 청원이 잇따랐다. 한양 떠나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경험칙에 집을 팔지 않은 지방 발령 관리들은 기러기 신세가 됐다. 조선 부동산 시장이 지금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NH농협은행이 신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중단했다. 전세대출과 아파트 집단대출도 막았다. 우리은행이 대열에 동참했고, 제2금융권으로 번진다. 금융권은 대출 금리 인상도 추진 중이다. 가계부채가 1천700조원을 돌파하면서 집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자 정부가 돈줄 차단에 나선 것이다.
19년 만에 최고라는 올 상반기 아파트 가격 상승은 경기도가 주도했다. 동두천시는 1~7월 35.4%, 안산시는 33.4%, 시흥시는 33.1% 급상승했다. 동두천시 아파트 거래량은 2천53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8% 증가했다.
대출 길이 막히면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도 줄기 마련이다. 예비입주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전세금을 올려주지 못해 월 세입자로 추락하는 가구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아파트 집단대출이 막히면 분양시장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현 정부는 부동산 정책 전패(全敗) 신화를 써가고 있다. 세금 폭탄이 불발하자 공급 확대로 돌아서고, 종부세 대상도 오락가락한다.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 세대엔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한다고 호통을 치다 어물쩍 꼬리를 내렸다. 자격을 잃지 않을까, 낡은 아파트 고친 조합원만 바보가 됐다.
정부는 최근 '아파트 지금 사면 상투'라고 경고했다. 이를 비웃듯, 수도권은 신고가 행진을 멈추지 않는다. 급기야 대출마저 조였다. 실수요자와 20·30세대는 망연자실이다. 200만 세대를 공급하겠다며 집단대출을 막겠다고 한다. 정책 실패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서 수신인은 정부인가, 국민인가. 갈수록 요지경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