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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디아스포라(Diaspora)'는 나라를 잃고 흩어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가장 유명하다. 기원전 6세기엔 바빌로니아에, 서기 132년엔 로마에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은 수천년 세계를 떠돌다,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그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투철한 상무정신으로 중동의 강자가 됐다.

나라 잃은 민족의 처지는 고단하다. 우리라고 예외가 아니다. 문약했던 조선의 도공들은 일본에 끌려갔다. 절정은 일제시대였다. 나라를 잃은 한국인들은 나라 밖에서 독립과 생계를 모색했다. 광복이 됐지만 귀국하지 못한 동포들이 조선족으로 중국에 정착하고, 고려인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내려야 했다. 조국을 두 번 잃은 그들은 이민족의 차별과 멸시를 고스란히 감당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이 각별했던 이유이다.

6·25전쟁도 민주주의국가 남한과 공산주의국가 북한 사이에서 하나의 국가를 선택해야 했던 참혹한 실향의 역사를 남겼다. 흥남 부두에 모인 30만명 중 10만명 정도만 유엔군과 함께 탈출할 수 있었다. 그 인파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있었다. 북한을 탈출한 난민들에게 부산과 인천은 희망봉이었다.

망국과 실향의 역사가 가득한 이 땅에 귀빈들이 왔다. 아프가니스탄 피난민을 태운 대한민국 공군 수송기가 26일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정부는 대사관 직원 등 한국을 도운 아프가니스탄 국민과 가족 391명을 안전하게 구출했다. 탈레반 집권으로 지옥으로 변한 조국을 탈출하려는 아프가니스탄 디아스포라는 장면마다 비극적이다. 이륙한 비행기를 붙잡고 있던 형제가 추락사하는가 하면, 터키 등 아프가니스탄 인근 국가들은 장벽을 세우고 드론을 띄워 아프간 난민들의 자국 진입을 봉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도움으로 조국을 탈출한 아프간 사람들의 심정은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구출한 391명은 아프가니스탄 디아스포라의 희망이다. 이들은 난민이 아니라 대한민국 협력자였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의 부역자로 낙인찍혀 생명이 위태로웠으니 구조는 당연했다. 차별과 혐오가 어른대는 망국과 실향의 역사를 극복한 국민으로서,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어야겠다. 이들을 향한 각박한 언사는 국격만 떨어뜨릴 뿐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