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은 내륙국가로 무역로의 중심지였으며 이로 인하여 외세의 침범이 자주 있었으며 1978년 공산정권 수립으로 저항세력인 무자헤딘을 중심으로 무장 항쟁이 시작되었다. 소련(현 러시아)은 1979년 2월에 일어난 이란의 이슬람 혁명의 영향을 받은 아프간의 무장 세력들과 저항세력들이 전국적으로 반란을 일으키자, 초기에는 일부 군사고문단만을 파견하려다가 동년 10월에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김일성과 한반도 공산화를 계획하다가 그해 12월에 갑자기 아프간 내전 참여쪽으로 선회하면서 끝없는 지옥행 열차를 타게 되었다. 이로 인해 1979년 12월부터 1989년 2월까지 1만5천여명의 전사자를 내었고 물질적 손실은 1987년 CIA 보고서에 의하면 500억 달러에 달했다. 그리고 1990년까지 아프간 국가수입의 75%가 소련의 원조로 충당되었다.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에서 소련은 결국 붕괴로 이어지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당시 반군테러의 주축 세력은 아프간의 지형을 잘 아는 신학교 출신 학생들, 즉 탈레반으로 이들은 미국의 후원하에 승승장구하여 소련의 철군과 정전불안의 틈을 타고 1997년에 정권을 장악하였다.
탈레반은 강압정치로 여성의 교육금지, 부르카 착용, 남성 미동반 시 외출금지 등의 공포정치를 단행하였다. 미국은 9·11사태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에 은신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탈레반 정권과 전쟁을 벌여 이를 축출하고 2004년 총선을 통해 카르자이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아프간 위정자들의 부패와 무능으로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반정부 무장세력들의 득세로 결국 아프간은 또다시 탈레반 치하로 들어갔다. 아프간 국민들은 과거에 탈레반이 폭정을 저지른 것을 기억하면서 대부분 불편한 심기를 보이기도 하였지만 현 정부가 분열과 부패로 만연되어 희망이 없는 상태라 오히려 잘 무너졌다고 자위하는 국민들도 있다.
카불 입성 후에 탈레반은 국제고립을 막고 대외 이미지 제고를 위하여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고 하였으나 점차 자신들의 본색인 과격 샤리아 표방과 일반 사면령을 발표하였다. 국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한편 유화적 제스처로 정부구성에 여성도 참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피폐해진 경제를 살려 국민의 민심을 얻기 위하여 과거와는 달리 개방적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벌써 미국이 떠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중국은 탈레반과 우호적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밝혔으며 러시아와 이란도 외교적 제안을 한 상태이다. 미국도 탈레반이 앞으로 여성권리를 존중하고 이슬람 극단주의를 취하지 않는다면 정부로 인정하겠다고 하였다.
미국은 왜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고도 아프간을 떠났을까? 미국은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등 중동정책을 줄곧 실패작으로 남겼으며 더 이상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간주하고 문제 발생 시에는 동맹국들과 연합으로 대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국을 저지하는 일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부터 이라크, 시리아와 아프간에서 발빠른 철수를 계획한 것이다. 이제 미소를 짓는 이란과 아프간에서 소련처럼 중국이 진을 빼서 지치기를 바라는 미국의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의 행방은 결국 20년 만에 정권을 다시 잡은 탈레반의 손에 달려있다. 다만 그들이 과거로 회귀하지 않고 정상적인 이슬람국가로 운영되어 모든 아프간 국민들이 우리와 같이 동시대를 평화롭게 살아가길 바랄뿐이다.
/김종도 가천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전 한국중동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