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한 조건에 맞닥뜨린 근대 예술가들은 상상력에서 존립 근거를 마련해 내었다. 상상력이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능력이 아니라, 지각작용으로 받아들인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능력이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현실을 고수하고자 하지만 상상력에 바탕을 둔 예술은 현실을 대상으로 삼되 불완전한 현실 너머로 미끄러지는 지점에 자리한다. 그러니 근대의 예술가는 상상력을 도약대 삼아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로 이월하려는 인간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자유롭다거나 오만하다는 예술가에 대한 이미지는 이처럼 유동하는 상상력의 운동성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1954년 창립때부터 심각한 문제점
당시 법무장관 김법린·김동리 짝짜꿍
원로 대거 탈락시키고 지인들 인선
그런 점에서 본다면 '회원을 우대하고 회원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대한민국예술원법에 근거하여 정부가 설립한 특수예우기관'인 대한민국예술원은 모순된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인사말'에서 예술원장은 예술원이 '대한민국 대표 예술기관'임을 자임하고 있는바, 대표성은 국가권력의 지원을 받되 국가권력이 그어놓은 경계에 포획되지 않는 예술적 지향으로써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은 예술의 자율성이 제대로 존중받고 보장되는 사회에서나 해결이 가능하다. 현재의 정치권력·경제권력과 맞서는 데 예술의 역할이 놓여 있으며, 결국 예술이 제기하는 모순을 해결하면서 우리 사회가 풍요로워지리라는 믿음이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원의 정책은 이러한 예술의 자리를 마련해 내는 데로 나아가야만 한다. 성공한다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해 나가면서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진다. 사명을 몰각할 때 예술원은 국가권력을 패트런으로 삼은 나팔수로 전락하고 만다. 혹은 이권과 특혜를 나누어 챙기기에 몰두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기 십상이다.
기실 예술원은 1954년 창립될 때부터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왔다. 문학분야의 경우 40대 초반·30대 후반의 김동리, 서정주, 조연현이 회원으로 뽑힌 반면 김광섭, 이헌구, 이하윤, 박계주, 모윤숙 등 원로급은 탈락하고 말았다. 원로들은 "문교부 장관 김법린과 김동리 둘이 짜고, 예술원 회원을 선거한 예술가들의 인선까지도 모두 김동리와 가까운 사람들로만 등록해 놓았기 때문에" 낙선했노라 반발하였고,(서정주, '명천옥 시대') 문단은 결국 한국문학가협회와 자유문학자협회로 양분되었다. 일제 말기 김법린은 다솔사에서 김동리의 큰형 범보에게 사숙한 바 있고, 김동리도 당시 생활 근거가 다솔사였으니, 원로들의 지적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김동리, 서정주, 조연현 등이 예술원 회원을 역임하면서 자유당 정권 및 군사정권의 충실한 동반자로 역할하였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국가권력 패트런으로 '나팔수' 전락
종신제·月수당 시간 흘러도 안변해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이 다방면에서 크게 성장하였어도 예술원은 변한 것 같지가 않다. 이기호가 쓴 '동료 선후배 문인 여러분께'에 따르면, 2020년 청년예술인사업 예산은 전년보다 절반이 깎여 10억원으로 줄어든 반면, 예술원 예산은 1억2천만원이 늘어난 32억6천500만원이라고 한다. 100명이 안 되는 회원 수를 생각한다면 적지 않은 액수인데, 신입회원은 회원들의 동의를 거쳐 선출되는 만큼 기존 회원들과의 친분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예술 발전에 공적이 현저한 사람'이라는 자격 요건이 모호하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알 일이다. 회원 임기는 종신제이며, 매월 180만원의 정액 수당을 받는다. 이기호는 지난해 예술원 문학분과의 예산으로 작품집 발간 지원 2억7천만원, 예술창작활동 3천만원, 예술특별강연회에 400만원 등이 지급되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이순원의 '대한민국예술원을 폐지하라'에는 더한 사실들도 지적되어 있는데 생략하는 게 좋겠다. 이순원의 말마따나 문학을 하는 우리까지도 너무나 부끄럽기 때문이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민교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