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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년 김해문화재단 대표이사
'자유로이 일하는 자'로서 시간을 보낸 지 딱 365일 만에 나는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이전과 다른 것은 우리나라의 동남단에 있는 김해시가 출연한 문화재단에서 일하게 됨으로써 수도권이 아닌 지역으로 공간이동을 했다는 점, 1년 동안 가까운 이웃과 일상을 나누면서 한 사람의 주민으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다시 공공조직의 역할을 살펴보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나의 경험은 '경험의 노래들'(2021)에서 마틴 제이가 말한 "'경험'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경험에 특별한 강조점을 둔 많은 사람에게서 놀라운 감정을 촉발하는 하나의 기표"라는 의미에 가깝다. 어쨌든 나는 세금을 내는 국민이고, 이웃공동체의 구성원이고,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이고, 같은 목적을 향해 고민하는 직장 동료이며, 사는 지역에 도움이 되고 싶고, 인류가 창작, 제작, 생산하는 모든 것의 총체인 '문화'를 누리고, 습득하고 이를 통해 성장하고 싶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조직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

지난 6월23일 제388회 국회 임시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 '예술인 복지법 일부 개정법률안', '문화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안', 그리고 '문화재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 등을 심의하였다. 그리고 8월17일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이 제390회 국회 임시회에서 의결되었고, 8월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통과, 8월30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알다시피 이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발의되었지만 폐기되었고, 21대 국회에서 재발의하여 통과됨으로써 참으로 긴 여정을 거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자. 제1조는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예술인의 노동과 복지 등 직업적 권리를 신장'하며, '예술인의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를 보장하고 성평등한 예술환경을 조성'하여 '예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법의 목적을 기술하고 있다. 제4조는 예술인의 역할에 관한 것으로 '다양한 문화정체성을 발현하여 우리사회 영역 전반을 풍요롭게 하고 이를 통하여 미래세대에 계승될 문화유산을 창조, 발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예술가에게 해야 할 일을 강제한다기보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법적 인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조항은 예술인의 인권과 지위, 권리 등의 보장에 대한 요구를 정당하게 만들어 주는 선행적 인식 기반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눈여겨볼 것은 제5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이다. 예술가의 지위와 권리보장은 사회적 인식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법이 규정한 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창작과 표현의 자유보호,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신장 시책 마련, 예술지원 사업결정에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 하고, 문화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예술인의 예술 활동을 지원할 책무를 갖는다'는 조항은 예술에 대한 국가의 지향, 이상적인 지침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포괄적인 방향은 동시에 현실에 맞도록 구체화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므로 그런 점에서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 규정은 중요하다고 본다. '예술인에 관한 정책결정과 시행에 예술인이 참여'하도록 해야 하고, '예술인에 대한 성희롱·성폭력을 금지 예방'하고, '피해자의 보호와 권리구제를 위한 시책을 마련'해야 하며, '예술지원기관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으며 예술지원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조항 또한 지역문화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그동안 '독립성'과 '자율성'이 어디까지를 말하는가에 대해 논란이 되어 온 만큼, 정부와 지자체의 출자·출연기관과의 관계, 지원기관과 예술단체와의 관계, 예술단체와 예술가의 관계에 대한 출발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의 제정만으로 만족하지 말자. 지역의 문화재단, 지역 현장에서 다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책무로써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질문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예술가와 시민의 존엄과 주체성, 문화·예술의 가치가 삶 속에서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나의 삶도 건강하게 성장하더라는 경험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말이다.

/손경년 김해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