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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책꽂이 꾸미는 동네책방 '문학소매점'/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판매할 책을 단골들이 직접 정하는 동네 책방이 있어 눈길을 끈다.

단골들이 추천 목록을 정하면 책방 주인은 그 목록대로 책을 주문해 손님의 이름표가 붙은 책꽂이에 진열해 책을 파는 방식인데, 자신이 추천한 책이 많이 팔리면 책방 주인이 주는 깜짝 선물도 받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인천 개항장 거리, 중구청을 비스듬히 마주 보고 있는 작은 책방 '문학소매점'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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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책꽂이 꾸미는 동네책방 '문학소매점'/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문학소매점 한쪽 벽면은 30여 칸으로 나뉜 책꽂이가 차지하고 있다. 이 책꽂이에 붙은 이름은 '중매점'이다. 단골이 다른 손님에게 책과 인연을 맺어주는 '중매쟁이' 활동을 한다는 뜻에서 문학소매점 주인 정웅(38)씨가 붙인 이름이다.

이 책꽂이는 원래 정씨가 좋아하는 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지난 3월 서점 문을 연 그가 동네 손님들의 취향이 반영된 책장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자신의 기존 책을 정리하고 대신 손님들에게 책꽂이를 내어줬다.

책꽂이 칸칸 마다 그곳을 관리하는 손님들의 이름표가 붙어있다. 책꽂이를 직접 꾸밀 30여 명의 손님은 지난 5개월 동안 책방을 제집처럼 드나든 단골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참여하겠다는 뜻을 보내온 이들 위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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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책꽂이 꾸미는 동네책방 '문학소매점'/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추천 도서를 구매해 꽂아 놓는 일은 책방 주인 정씨가 맡고, 책꽂이가 허전하지 않도록 예쁘게 장식하는 일은 손님들이 직접 했다.

손글씨로 쓴 인사말과 구애 편지는 기본. 어떤 손님은 예쁜 미니어쳐 책방 모형을 직접 제작해 꾸몄고, 다른 손님은 예쁜 인형이나, 오르골로 책꽂이를 장식했다. 한 손님은 추천 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써 붙이고, 구형 휴대용 CD 플레이어와 음악 CD도 비치해뒀다. 예쁜 오르골과 수제 인형, 한복을 입은 바비인형으로 책꽂이를 꾸민 손님도 있다.

이설야 시인과 양진채 소설가 등 지역을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문인들도 책 중매 활동에 동참했다. 양진채 작가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랜덤박스' 전략을 택했다. 무슨 책인지 알 수 없도록 책 전체를 예쁘게 포장했고, 대신 무슨 책인지 짐작해볼 수 있도록 엽서에 추천의 글을 함께 남겼다.

8월 초부터 시작했으니 한 달 정도 지났는데, 다른 손님들의 반응도 좋고 꽤 성공적이라는 것이 정 사장의 설명이다. 10권이 팔리면 동네 주민들로부터 협찬받은 와인이나, 시집 등을 선물로 주기로 했는데, 벌써 9명이 판매량 10권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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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책꽂이 꾸미는 동네책방 '문학소매점'/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책꽂이 주인끼리 은근히 경쟁도 치열하다고 한다. 지인을 동원해 자신이 추천한 책을 구매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정웅 문학소매점 사장은 "책 판매 수익은 제가 가져가는 거다. 그런데도 손님들끼리 판매 경쟁을 펼치는 모습이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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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책꽂이 꾸미는 동네책방 '문학소매점'/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그는 책을 사서 읽는 독자가 중심이 되는 독자참여 서점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독자들의 시낭송이 결합한 시집 판매 기획전 등을 준비 중이다. 또 다음 달부터 추천 목록 '업데이트'도 조금씩 진행할 계획이다.

정웅 사장은 "내 일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는 손님들이 너무 고맙다"면서 "서점이 문을 닫는 날까지 손님들이 꾸미는 책꽂이를 계속 가꿔가겠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