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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미관계나 남북 간의 대화 모색이 타진되고 있으나 여전히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면이다. 북한은 아직 트럼프식 일괄타결과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를 절충한 바이든식 '실용적 접근법'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교착의 늪에 빠진 것은 북미 간, 남북 간의 신뢰 기반이 부재한 탓이며 조정자의 부재 탓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의 조정자'를 자처했지만 트럼프의 대북 드라이브를 제어할 수 있는 지렛대를 갖지 못했으며, 개성공단 문제나 금강산 관광 문제에 대해 정부 해법을 관철하지도 못했다. 북미협상이 공전되면 남북관계도 폐색되는 양상이 반복돼왔다. 그러니 지방정부 나름의 교류협력 사업을 계획해봐도 남북관계의 진전이나 정부의 '처분'만 기다리는 종속변수에 불과했다.

북미협상이 남북관계를 규정하고 남북 정부의 대화 진척이 지방정부나 민간의 교류협력사업을 좌우하는 전형적 내려먹임 구조이다.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를 보완할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해야 하고, 지방정부도 창의적 접근법으로 남북관계를 보완하고 역진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는 지방정부 차원의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고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교류협력에서는 빅딜 만이 능사가 아니다. 하노이에서 북미협상의 결렬이 긴 교착으로 이어졌듯이 일괄타결식 협상은 실패의 확률도 높고 깊은 후유증을 남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지속적이고 다양한 교류가 교착을 타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고 교류가 축적되고 확대된다면 자연스레 역진을 방지하는 스냅백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다. 남북 교류협력에서 지방의 특성과 조건을 고려한 자율성과 분권이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정부, 지방 남북교류협력 사업 자율성 줘야
인천시, 강화 볼음도에 첫 '평화정원' 추진


인천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평화정원 조성사업'은 주목할만하다. 인천시, 인천도시공사, 인천시교육청 등의 기관이 힘을 모아 강화도 일대에 '평화정원'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지방정부 차원에서 생태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평화공간을 조성, 남북 교류 환경을 개선하려는 사업이다. 첫 평화정원은 천연기념물 제304호 은행나무가 있는 강화 볼음도에 조성된다. 수령 800년을 자랑하는 이 은행나무는 주민들이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로 여겨왔다. 이 나무는 본래 황해도 연안군 호남리에 있는 부부나무 중 하나였는데, 큰 홍수가 있던 해에 뿌리째 볼음도로 떠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볼음도 은행나무는 수나무이고 그 짝인 암나무는 북한 연안군 호남리에 있는데 연안의 은행나무 역시 비슷한 수령으로 북한 천연기념물 165호로 지정됐다. 볼음도 주민들에 따르면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는 양쪽 주민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 음력 정월 그믐에 맞춰 각각 제를 지내왔는데 분단 이후 중단됐다고 한다.

볼음도 해변과 연안군에서 따로 살아가는 두 은행나무가 철조망을 넘고 분단의 바다를 건너서 만나 얼싸안고 입 맞추는 환상적 모습을 홍성담 화백이 '은행나무 키스'라는 작품으로 제작한 바 있다. 볼음도 은행나무가 간직한 800년의 사연을 가다듬고 주변 경관을 정비한다면 시민들이 분단을 체험하고 평화의 염원으로 치유하는 생태 정원으로, 예술 공원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침 문화재청도 '부부 나무'로 알려진 인천 강화군 볼음도 은행나무와 북한 황해남도 연안 은행나무의 사연을 매개로 한 남북 협력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으니 성사된다면 70년간 중단됐던 두 마을 간의 교류도 재개되고 남북 지역교류의 전형이 될 수 있겠다.

남·북 갈라진 800년 은행나무 사연 매개로
70년 중단 두마을간 교류재개 물꼬 틀 수도


지금처럼 대화의 길이 막혀 있을 때는 교류협력의 환경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천시의 '평화정원사업'이 성공을 거두어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이견과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계기로,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냉전적 조형물이나 공간을 평화공간으로 재기획하는 사업으로 이어져 '평화도시'와 남북 평화 정착의 마중물이 되기 바란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