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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개봉한 영화 '1급 비리'는 방위산업 관련 비리를 폭로한 내부자의 험난한 역정을 쫓는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을 연출한 홍기선 감독(1957~2016)의 유작으로, 배우 김상경과 최무성이 열연했다. 2002년 전투기 사업에서 미국 특정 기종이 선정되도록 국방부 핵심인사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사건과 2009년 해군 장교가 양심선언을 통해 납품 비리 의혹을 제기한 사건이 모티브라고 한다.

극 중에서 집요하게 비리를 파헤치는 박대익 중령(김상경 분)에게 상관인 천 장군(최무성 분)은 "힘이 없는 정의, 그것이 가능하다 생각하느냐" 비웃는다. 국방부 구매 부서의 터줏대감 황주임(김병철 분)은 "식구들 도둑으로 취급하고 밥은 넘어가네"라고 비꼰다. 공익을 위한 노력과 희생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검찰 발 '고발 사주 의혹'이 대선 정국을 흔들고 있다. 핵심은 윤석열 전 총장이 현직일 때 대검 중간 간부를 통해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여당 의원 등의 고발을 사주했다는 내용이다. 인터넷 매체 보도로 촉발된 의혹은 여야 정치권과 언론이 가세하면서 갈수록 눈덩이다. 대검은 감찰에 나섰고, 여권 정치인이 지원사격에 나선 양상이다.

문서를 국민의힘에 전달했다는 김웅 의원은 "제보자는 윤 전 총장과 유승민 전 의원을 모두 잡으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보자가 누구인지 안다는 취지로 언론 인터뷰를 했으나 실명을 밝히지는 않아 궁금증만 키웠다.

대검은 김 의원 기자회견 도중 제보자가 공익신고자 요건을 갖췄다며 신원 관련 내용을 공개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권익위는 이런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검찰의 판단이 무리가 아니란 입장이다. 대검이 공익신고자 판정 사실을 공개해 김 의원이 제보자 신원공개를 못하도록 압박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공익제보자(whistle-blower)는 공익을 위해 용기 있게 정의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다. 조직과 동료에 대한 죄의식을 덮고 공공의 안전과 권익을 지키기 위해 내부 부정과 비리를 외부에 알리는 행위를 한다. 하지만 공익제보자가 갖춰야 할 자격이 있다. 합목적성, 합리성, 객관성이다. 공익으로 포장한 사악한 음모가 시발이라면 사실(Fact)을 말해도 믿음을 잃기 마련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