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_-_수요광장.jpg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며칠 전 '워싱턴윤동주문학'이라는 책을 우편으로 받았다. 워싱턴윤동주문학회에서 연간으로 내는 책 2호였다. 권말에 실린 '행사 및 연혁'에서 나는 2008년, 2010년 두 번이나 워싱턴DC를 방문하여 그곳 문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는 것을 환하게 추억하였다. 오래전이지만 그곳 분들과의 기억이 떠올라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몇몇 분과 메일을 주고받았다. 시간이 흘러 최연홍, 윤석철, 이천우 시인이 타계하셨지만, 윤동주 모임이 지금도 지속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특별히 올해 초 돌아가신 최연홍(崔然鴻) 시인의 추모 특집이 마련되어 새삼 그분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짧게나마 여기에 그분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교포시인으로서 고국의 정서·문화
재성찰하고 표현하는 일 지속 수행


최연홍 시인은 1941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연세대 재학 시절인 1963년 '현대문학'에 '빈 의자' 등이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1967년 가난한 학생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1972년에 인디애나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곳에서 위스콘신대학, 올드도미니언대학, 미시시피대학, 워싱턴대학 교수를 역임하였고 국방장관 환경정책보좌관을 맡기도 했다. 첫 시집 '정읍사'는 고국을 떠나 가난한 유학생으로 생활했던 이국에서의 청장년 시절을 담았다. 시집 '아름다운 숨소리'에서 시인은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한 7년여의 시간을 노래하였다. 시집 '잉카 여자'에서는 여행에서 만난 이방인들의 삶과 풍속과 아픔을 시적으로 승화하였고, 시집 '별 하나에 어머니의 그네'에서는 가없는 사향(思鄕)의 마음을 노래하였다. 시인은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낡고 오래된 사물과 기억을 옹호해 왔고 그러한 시심을 열정적으로 일구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최연홍 시인은 이민문학으로서의 시를 통해 이민자의 삶을 아름답게 형상화했다. 그 세계를 통해 고국의 정서와 문화를 다시 한 번 성찰하고 표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렇게 시인은 워싱턴을 삶의 근거지로 삼은 교포 시인으로서 모국어의 아름다움과 유려함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일상적으로 이중언어(bilingual) 환경에 놓인 이민자 시인이 이렇게 치열하고도 견고한 언어적 자의식을 보여준 사례는 퍽 드물 것이다. 그만큼 최연홍 시인은 오랜 기억과 감각 속에 녹아 있는 모국어의 심미적 진경을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개척하고 완성해낸 사례일 것이다. 또한 시인은 영문시집을 네 권 펴냈는데, 특별히 세 번째 시집 'Copenhagen's Bicycle'에서 시인은 이민자의 삶에 한정되지 않은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해 깊은 실존적 노래를 완성하였다. 유목의 언어를 통해 이민 생활의 고독과 결핍을 선명하게 전해주면서도, 그와 동시에 고국에 대한 절절한 향수나 모국어에 대한 애착도 보여준 것이다.

모국어 아름다움 유감없이 보여줘
동포사회에 문학단체 창설 하기도
그의 공적 헤아리며 추모마음 새겨


미국으로 건너간 직후인 1970년대에 시인은 미국 최초의 한인 동인지 '지평선'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90년 워싱턴문학회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어 그때부터 윤동주문학을 미국에 뿌리내리게 했다. 그는 미국의 여러 문예지와 런던의 펜 인터내셔널에 시를 발표하였으며,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계관시인 초청으로 한국 시인으로는 처음으로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그의 '아리조나 사막'은 뉴욕 밀드레드에 의해 미국 남서부를 그린 최고 시편으로 선정되었으며, 그의 단편은 미국의 대학 교재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이점, 국제화 시대를 앞서간 선구적인 해외 한국문학 활동으로 평가할 만한 것이다.

그는 오랜 이국 생활에서 발견한 삶의 원리를 고독하고도 힘찬 언어로 들려주었다. 이때 우리는 그의 작품이 이민생활이라는 실존적 발생론을 매우 충실하게 반영하였음을 깨닫게 된다. 일찍이 그는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에 의해 2009년 제4회 윤동주특별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6년에는 제1회 윤동주서시해외작가특별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동포사회에 문학 단체를 창설한 것은 물론, 미국의 저명한 시인들과 줄기차게 교유하였다. 이점 역시 우리 시대를 가로지르는 국제 활동으로 주목받아 마땅하다. 그의 공적을 헤아리면서 추모의 마음을 여기에 남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