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피플(people)에 어울리는 번역어는 무엇인가. 국민·대중·민중·사람들? 그 무엇도 마땅치 않다. 피플의 가장 적절한 번역어는 '인민대중' 혹은 '인민(人民)'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인민'이란 말과 '동무'란 단어는 아예 못 쓰는 말이 됐다. 북한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로 널리 인유되는 말은 바로 1863년 링컨이 펜실베이니아 게티즈버그에서 행한 연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이다. 이처럼 '피플'을 국민으로 번역하는 것은 사실 난센스다.
민주주의 시스템도 매우 불완전하다. '국민의'는 그렇다 쳐도 '국민을 위한'은 이미 근대 이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민본정치(民本政治)가 그렇다. 민본정치는 '맹자'나 '서경'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백성을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혜의 대상으로 보고 선정을 펴자는 노선이다.
그러면 '국민에 의한'은 어떨까. '국민에 의한'은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의 근거다. 그러나 '국민에 의한'도 불완전하다.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던 독일 국민은 히틀러의 나치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나치는 1933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다. 민주적 선거, 즉 '국민에 의한'에 의해 나치와 히틀러가 등장한 것이다. 또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세계인들의 예상을 깨고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국민에 의한'이었다. 이는 '국민에 의한' 선택도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에 의한'에 따라 다수의 지지를 받았어도 바른 선택이 아닐 수도 있으며, 또 최선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현재 거대 양당에서 대선 경선이 치열하게 진행 중에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은 안중에도 없이 온갖 의혹 제기와 비방전으로 얼룩져 있다. 본선 전에 벌써 이 지경이니 모든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고루 받는 당선자가 나오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리고 '국민에 의한' 선거도 어쩌면 '국민을 위한' 선택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국민에 의한'의 한계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함께 현명한 집단지성이 절실하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