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편법과 협잡으로 성공한 부동산업자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을 주목하는 세계의 시선은 불안했다. 불안은 현실이 됐다. 예측불허에 기고만장이고 죽 끓듯 변덕이 심한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국제정치에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켰다.
트럼프 리스크는 동맹국인 한국에 특히 심각했다. 트럼프는 공언한 대로 동맹유지 비용 청구서를 들이댔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도발하자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한반도 정세를 냉각시켰다.
실제로 트럼프는 한국 경제를 무너뜨리고 한반도에 전쟁을 촉발할 뻔했다. 전설적인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백악관 내부정보를 모아 2018년 9월 '공포-백악관의 트럼프'를 출간했다. 이 책에 한미 FTA 파기와 주한미군 가족 철수 작전이 무산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트럼프 책상에 올려져 있던 한미 FTA 파기 공식문서를 경제수석보좌관이 훔쳐 막았다는 일화는 거짓말 같다. 트럼프가 서명했다면 끔찍한 재앙이 될 뻔했다.
김정은의 도발에 열 받은 트럼프가 북과의 전쟁에 대비해 주한미군 가족 철수 명령을 고민하자, 군 수뇌부가 북한에게 오판의 빌미를 줄 수 있다며 겨우 만류했다는 대목에선 모골이 송연해진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몇 년 뒤 "우리는 (전쟁에) 매우 가까운 상황이었다"고 긴박했던 실제 상황을 증언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백악관 참모의 절도(?)와 미군의 직언으로 2017년 위기를 넘긴 셈이다. 그랬던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을 세 차례나 갖고 김정은을 극찬했으니 어이없는 일이다. 물론 김정은도 트럼프의 하노이 노딜 선언으로 쓴맛을 봤지만….
밥 우드워드의 신간 '위기'가 또 한 번 화제다. 이번엔 지난 미국 대선을 전후해 미국 합창의장이 트럼프 몰래 중국 합참의장에게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중국과의 전쟁은 없다'고 안심시켰다는 일화를 공개한 것이다. 재선 실패로 제정신이 아닌 트럼프가 군사 도발을 벌일까 불안해하는 중국을 달랬다는 얘기인데, 합참의장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 몰래 벌인 일이니 파문이 적지 않은 듯싶다. 패배가 확정됐는데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을 선동하는 트럼프의 군통수권을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 트럼프 리스크는 곱씹어볼 선례이자 교훈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