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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코로나19 이전에는 군부대 강연을 한 적이 많았다. 그날은 헌병대였다. 20대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땐 보통 그들이 읽을 만한 가벼운 책들을 소개하는 편인데, 어떤 책을 골라 소개해줄까 곰곰 고민하다 대여섯 권 정도의 소설과 인문학서 등을 챙겼다. 그리고 강연 끝물에 나는 린드그렌의 동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잘 아는 '말괄량이 삐삐' 바로 그거다. 사람들에게 '작은 아씨들'이나 '빨강머리 앤'을 읽어 보았냐고 물으면 "그거 안 읽은 사람이 어딨어? 당연히 읽었지!" 대답한다. '작은 아씨들'은 1천페이지가 넘는 책이고 '빨강머리 앤'도 500페이지가 넘는다.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다. 그걸 알려주고 다시 물으면 갸우뚱한다. 안 읽었나? 어렸을 때 아이들 용으로 편집한 요약본을 읽었거나 아니면 만화영화나 영화로 보고선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도 그런 식이다. 물론 그날 헌병들은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를 TV로 본 세대도 아니므로 겨우 몇몇이 삐삐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천안함 사고로 아빠 잃은 작은 아이
바다를 보며 "아빠가 바다에 빠졌어"
저 일을 어쩌나… 나는 그만 입을…


삐삐의 엄마는 삐삐가 아기일 적에 죽었다. 선원이었던 아빠는 폭풍우에 쓸려 바다에 빠졌다. 하지만 삐삐는 아빠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는 저 먼바다를 오래 헤엄쳐 식인종들이 사는 섬에 닿았고, 그곳에서 식인종들의 왕이 되어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삐삐는 슬프지 않다. 삐삐의 상상 속에서 아빠는 멋지고 대단하다. 그 상상은 삐삐를 현실 속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힘이 센 아이로 만든다. 삐삐는 행복하다. 내가 그 이야기를 헌병들 앞에서 꺼낸 건 내가 기억하는 한 슬픈 장면 때문이었다.

천안함 사고가 있었을 때 나는 저녁 뉴스를 보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가족들을 태운 배가 사고 지점으로 갔고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부모와 형제, 아내들이 가없이 오열했다. 그때 바다를, 그 시커먼 바다를 바라보던 아주 작은 아이.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그 작은 아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가 바다에 빠졌어."

나는 그만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저 일을 어쩌나. 아이의 아빠를 삼켜버린 저 바다를 어쩌나. 저 아이의 바다를 이제 어째야 하나. 나는 이후 시간이 오래 지나 삐삐의 아빠를 떠올렸다. 검고 깊은 바다를 혼자 헤엄쳐 식인종의 섬에 닿은 아빠, 그래서 왕이 된 아빠. 그 작은 아이가 조금 더 자라 글을 깨치고 삐삐가 나오는 동화를 읽었을까. 읽었으면. 꼭 그랬으면 했다. 만약 읽지 않았다면 내가 한 권 선물하고 싶었다. 아이의 눈 속에 어린 검고 깊은 바다를 걷어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 그 이야기를 청년들에게 했던 것이다. 책은 위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별것 아닌 종이 묶음인 듯해도 마음을 어루만지고 어깨를 안아줄 수도 있는 존재라고. 나는 그날 맨 앞줄에 앉아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던 키 큰 헌병을 기억한다. 아마 그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끝내 읽지 않았을지언정 삐삐와 삐삐의 아빠, 그리고 그 작은 아이와 아빠를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지는 않겠나 생각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아빠가 살아있다고 믿는 삐삐처럼
아이의 '검고 깊은 바다' 걷어냈으면


바다가 있는 도시에 사는 여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바닷가에 산책을 나갔는데 백여 명쯤 되는 해병대가 해안 쓰레기를 치우고 있더란다. 언니의 아들, 그러니까 우리 큰조카가 해병대다. 여동생은 그 속에 행여 조카가 있을까 싶어 다가갔단다. 몇 군인에게 조카의 이름을 대며 혹시 있느냐 물었지만 그 무리엔 없었단다.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고 싶었는데. 까짓 백 명이라도 다 돌리려고 했어. 이모가 한 턱 쏘려고 했는데 없지 뭐야."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쫄병 이모가 나대면 그것도 별로야. 잘된 거야." 그랬다가 욕먹었다. 쫄병은 무슨. 조카는 이미 병장이고 3개월 후면 제대란다. "아니, 걘 뭐 입대하자마자 제대야?" 공연히 한 마디 덧붙였다가 더 욕을 먹고 말았다. 정말이지 남의 집 아이들은 왜 이렇게 빨리 크는 거지?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