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구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A(34)씨는 8년 전 거리를 전전하던 노숙인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기운 뒤 홀로 서울 신림동의 원룸과 고시원에 머물던 그는 단기 아르바이트마저 구할 수 없게 되자 노숙을 해야 했다.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간 노숙인 쉼터에서 그는 계양구재활용센터(이하 재활용센터)의 자활 근로 일자리를 얻게 됐고, 이곳에서 5년간 성실히 일했다. 이제는 어엿한 사회복지사가 된 그는 과거의 자신처럼 오갈 곳 없는 노숙인들에게 심리 상담을 해주고 자활을 돕고 있다.
A씨가 재기할 수 있게 도와준 재활용센터는 지난 20년간 1천명이 넘는 노숙인이 거쳐 간 자활 근로 시설이다. 10년 전인 2011년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기도 했다.
노숙 생활을 하다 이곳에 정착한 이들은 가전이나 가구, 의류 등 재활용이 가능한 중고 물품을 고쳐 판매하는 일을 하면서 경제적 자립을 준비한다.
20년간 노숙인 1천명 자활 근로시설
코로나 타격 임금·임대료 감당 못해
그런 재활용센터가 코로나19 여파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매출이 급감해 자활 근로 중인 이들에게 줄 임금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재활용센터의 올해 임대료는 4천500만원. 여기에 인건비로 지출하는 비용 등을 합치면 재활용센터 운영에 1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재활용센터의 매출은 2019년 1억6천800만원에서 코로나19가 번진 지난해 1억1천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올해도 지난달까지의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감소했다.
재활용센터는 주로 저소득층이 이용하는데, 코로나19로 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매장의 중고 물품을 찾는 이들이 줄어 결국 매출 급감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당근마켓' 등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소비가 늘어난 것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재활용센터 관계자는 말했다.
부지 소유 캠코에 요청 부정적 답변
靑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 올려 호소
견디다 못한 재활용센터 측은 매장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임대료 감면을 요청했다. 하지만 캠코는 임대료 일부를 유예해 줄 수는 있어도 관련법에 따라 임대료를 감면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통보해 왔다. 재활용센터는 인천시청과 계양구청 등 백방으로 도움을 요청했으나 기대했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계양구재활용센터 이준모 대표는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이달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임대료 감면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이 대표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를 위해 정부가 '착한 임대인'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정부가 다른 곳도 아닌 노숙인 자활을 돕는 사회적 기업의 임대료 감면을 해주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국가에 성실하게 세금과 임대료를 내온 사회적 기업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