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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넷플릭스 화제작 '오징어게임'을 정주행했다.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최초의 한국 드라마라는 명성에 걸맞게 끊어갈 수 없는 몰입감이 압권이었다. 오징어게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 456명이 데스 매치를 벌여 최후의 승자가 456억원의 상금을 독식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게임을 주최한 미지의 권력은 참가자들에게 '공정한 게임'을 약속한다. 참가자들은 게임 직전까지 게임 주제를 모르고, 게임 수행의 조건을 스스로 선택한다. 하지만 456억원을 향한 참가자들의 희망은 첫 번째 게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무참하게 깨져버린다. 탈락의 벌칙은 목숨이었고, 절반 이상이 첫 게임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오징어게임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권력이 설계하는 공정의 룰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화두이다. 현실이라면 이 게임은 당연히 불가능할테다. 456억원을 차지할 한 사람을 위해 455명이 죽어야 하는 게임의 법칙이 공정한가? 1인당 1억원이라는 목숨의 가치는 누가 결정하는가? 또한 그가 누구이든 그에게 결정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탈락의 대가가 목숨이라는 사실을 첫 게임 이후 공개한 것은 공정한가? 게임의 설계가 불공정하니 게임 자체의 공정은 무의미해진다.

드라마는 현금 456억원이 담긴 슈퍼볼에 눈이 멀어버린 참가자들이 미친 듯이 서로 속이고 죽이는 아수라에 갇힌다. 결국 인성(人性)을 지킨 주인공이 인성을 잃은 경쟁자들을 물리치는데, 진부한 휴머니즘으로 풍자의 신랄함이 깨져버렸다.

대선정국을 강타한 대장동 개발의혹 사건은 오징어게임 못지 않은 스토리로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3억5천만원으로 4천40억원을 챙겼다. 앞으로 거둘 수익도 수천억원대라 한다. 오징어게임은 없는 사람들의 아귀다툼을 관람하려 456억원을 지불한 가면 쓴 설계자들의 유희였다. 그러나 대장동 의혹은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1~7호라는 가면을 쓴 7명이 천문학적인 잭팟을 터트렸다. 4천40억원엔 개발사업에 땅을 수용당한 원주민들과 대장동 아파트 구입하려 은행 돈을 빌린 입주자들의 피눈물이 배어있다.

현실의 불공정이 드라마의 상상력을 압도한다. 사람을 믿을 수 없다. 돈의 흐름을 따라가 설계자들의 가면을 벗겨야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