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개봉된 미국 영화 '로마의 휴일'은 왕실 공주와 신문기자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다. 틀에 박힌 왕궁 생활에 염증이 난 공주가 무작정 길을 나섰다가 멋진 남자와 연인이 되는 과정을 낭만과 위트로 묘사했다. 하지만 현실이라면 공주(오드리 헵번 분)와 신문기자(그레고리 팩 분)의 사랑은 축복받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 왕 에드워드 8세(1894~1972)는 재혼 이혼녀 월리스 심슨(1896~1986)과 결혼한 대가로 1936년 왕위에서 물러났다. 왕세자 시절, 에드워드는 런던 파티장에서 심슨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두 번 이혼한 여자와 결혼 경험이 없는 왕세자의 금지된 사랑에 영국 왕실은 분노했다. 심슨이 왕비 칭호를 받지 않고, 아이들이 왕위를 물려받지 않겠다고 제안했으나 거부됐다.
영국 출입이 금지된 부부는 프랑스로 이주했다. 국왕 신분이 아니기에 자유롭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죽어서야 조국 땅 왕실묘지에 묻힌 에드워드는 "무거운 책임을 지는 일도, 왕으로서 원하는 바대로 임무를 수행하는 일도,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회고했다. 14년 뒤 심슨도 에드워드 곁에 영면했다.
일본의 마코(眞子·29) 공주가 10월 중 남자 친구 고무로 게이(小室圭)와의 결혼을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수년간 이어진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결혼을 강행한다는 거다. 마코는 왕세제로 왕위 승계 순위 1위인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후미히토(文仁)의 장녀이자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조카다.
두 사람의 교제는 2017년 공식 확인됐다.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언론은 고무로의 경제 능력을 문제 삼았다.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가 애인으로부터 400만 엔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는 시시콜콜한 폭로가 나왔다. 마코는 최대 1억5천만 엔인 결혼 지원금을 받지 않거나 기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무로가 지원금을 같이 받는데 대한 반감을 의식한 것 아니냐고 한다. 둘은 미국 뉴욕에 신혼살림을 차릴 것으로 전해졌다.
가정사를 빌미로 결혼에 반대하는 일본 내 여론은 지나쳐 보인다. '사생활보다 각자의 위치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완고함이 답답하다. 광속의 시대에도 일본인들의 전근대적 사고는 바뀌지 않는다. 발전이 무뎌진 일본은 여전히 먹구름이 짙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