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flea)이 들끓는 고물을 거래한다 해서 벼룩시장(flea market)이라지만, 벼룩시장에서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주인이 헐값에 내놓은 명품이 안목 좋은 임자나, 순전히 운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경우인데, 예술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은 벼룩시장 단골 횡재수다. 한 미술 애호가는 프랑스 아를르시 벼룩시장에서 400프랑을 주고 구입한 풍경화 6점이 고흐의 작품으로 판명돼 대박을 쳤다. 한 프랑스인은 1991년 파리 근교 벼룩시장에서 1천500유로에 구입한 유화 한 점이 고흐 작품으로 인정받자, 경매를 통해 300만 유로에 팔아 돈벼락을 맞았다. 가난했던 거장의 작품들이 벼룩시장에 등장한 건 우연이 아닐테니, 작품도 작가의 기구한 운명을 꼭 닮았다.
하지만 벼룩시장에서 얻은 행운도 평등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여성은 벼룩시장에서 박스에 담긴 인형이 탐나 7달러를 지불했다. 놀랍게도 그 박스에서 르누아르의 작품이 발견됐다. 최소 감정가가 7만5천 달러.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작품은 도난당한 장물로 밝혀졌고, 판사는 원소유자인 볼티모어 미술관에 반환하도록 판결했다.
동네 공터에 펼쳐지던 벼룩시장도 이젠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주 거래 품목이 생활용품이라 돈벼락 횡재가 쉽지 않다. 그런데 지난달 6일 한 제주도민이 온라인 중고시장에서 구입한 중고 김치냉장고 바닥에 5만원권 2천200장, 1억1천만원의 현금이 매달려왔다. 깜짝 놀란 구매자는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결국 경찰이 어제 이미 사망한 60대 돈 주인을 찾았다고 밝혔다. 유족들이 돈의 존재를 모른 채 폐기물업체에 김치냉장고를 처분했던 모양이다.
김치냉장고 구매자의 결단이 놀랍다. 견물생심이고, 더군다나 표나지 않는 현금이었다. 눈 딱 감고 횡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현금이 가져올 불안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버지니아 여성의 행운은 백일몽으로 끝났다. 행운이 불행이 된 로또 1등 당첨자들이 적지 않다. 엄청난 행운의 결과가 행·불행으로 엇갈리는 세상 이치가 오묘하다. 횡재보다 양심을 택한 덕분에 제주 의인(義人)은 두 발 뻗고 행복할테다. 문득 대장동 돈벼락을 맞은 설계자들의 행운의 끝이 궁금해진다. 결말을 빨리 보고 싶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