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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시 가능동 철거를 마친 A씨의 집터 모습. A씨는 저축한 돈 등을 모아 신축에 구옥 주택을 신축하기로 하고 인허가와 철거까지 마쳤지만, 갑자기 몇몇 주민과 개발업체가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해 불안에 떨고 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기존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충분한 검토 및 협의 절차가 없고, 사업 기간도 짧아 이 같은 사례에 무방비라는 지적이다. /A씨 제공
40여년전 지어진 집 수도 배관 등 문제로 신축 결정
설계·인허가·철거까지 마쳤는데 청천벽력같은 소식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구성 곧 마친다는데
동의하지 않는 경우엔 결국 내쫓기는 건 아닐지 불안
"수년간 돈을 모으고 대출까지 받아 이제 막 신축공사를 시작했는데, 별안간 우리 집을 가로주택정비사업 구역에 편입시켰다니 황당합니다."

의정부시 가능동에 사는 A(34)씨는 요즘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오랫동안 거주한 단독주택을 허물고 다시 지으려고 설계와 신축 인허가·철거까지 마쳤는데, 갑자기 동네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하겠다며 관련 서류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A씨는 "40년 전에 지어진 집이다 보니 정화조며 수도 배관 문제로 계속 지출이 발생했다"며 "계속 목돈이 들어갈 바엔 아예 새로 짓기로 하고, 지난해 설계계약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신축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려동물과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단독주택 내 집을 꿈꿨는데,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면서 "이제 곧 조합 구성을 마친다는데, 나처럼 동의하지 않는 경우 결국 내쫓기게 되는 것은 아닐지 매우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A씨의 집은 지난 4월 13일 연번을 부여받은 가로주택정비사업 구역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이 사업 준비위원회는 가능동 707번지 일대 9천615㎡를 개발해 4개동 240세대가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 건설을 추진 중이다. 55개 필지로 구성된 사업 대상 토지는 75명의 소유자가 있는데, 이 중 80%(60명) 이상의 소유자가 동의하면 사업이 본격화한다. 현재 이 사업 준비위원회는 특정 업체와 손을 잡고 소유자들에게 조합 가입 동의서를 받고 있으며, 상당수 주민이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 있는 이유는 가로주택정비사업과 같은 소규모정비사업은 기존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달리 안전장치로 작동하는 각종 행정절차가 생략돼 있고, 사업기간도 짧기 때문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주민 공람 절차 등 반드시 거쳐야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이런 준비 절차가 전혀 없어
행위제한 할 근거도 없어 지자체도 이와 같은 사례 못 걸러내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근거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토지 소유자의 3분의 2이상이 모여 사업을 제안하면, 시가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반영 여부를 판단한 뒤 실질적인 정비계획을 세워 추진된다. 이 과정에서 각종 주민 공람 절차와 시의회 의견청취,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반면, 빈집및소규모주택정비에관한특례법에 근거한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이런 준비절차가 전혀 없다. 주민 대표 명의로 사업계획과 토지주 명부 등만 구비해 신청하면 시에서 연번을 부여받을 수 있고, 이후 주민 80% 동의를 얻어 조합을 결성하면 사업 시행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사업에 대한 충분한 검토 및 협의가 이뤄지기 어렵고, 사업기간도 1~3년 정도로 짧다 보니 A씨처럼 개별 세대의 신축공사와 충돌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정비구역 지정·고시 등 행위제한을 할 근거도 없어 지자체에서도 이런 사례를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 


건설노조 타워크레인 총파업 이틀째...멈춰선 공사현장5
사진은 수원시 한 재개발단지 공사현장. /경인일보DB

법의 취지는 주민 스스로 동네 정비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론 개발업체가 주도해 주민 선동하는 것도 문제
의정부시 "도입된 지 얼마 안 지나 미비한 부분 있어"

법의 취지는 주민들이 스스로 내가 사는 동네를 정비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론 개발업체가 주도해 주민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A씨는 "얼마 전부터 개발업자로 보이는 모르는 사람들이 주민들을 찾아다니면서 동의서를 받고 다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의 경우 이 사업이 뭔지도 모르고 번지르르한 말들을 믿으시는 것 같다"며 "또 개발업자들이 조합 가입을 거부한 세대엔 금방이라도 매도청구 소송을 할 듯이 말하고 다녀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믿을만한 대형 건설사도 아니고, 처음 들어보는 시공업체가 이미 정해져 있는 등 사업 자체가 그리 투명하게 진행되는 것 같진 않아 동참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시 관계자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이 도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부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있다"며 "정비구역 지정 등에 대해선 관련 정부부처에서 적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