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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1천300년전 매화꽃 피는 음력 2월 과거시험 합격자 발표 날에는 중국 당나라 장안성 동남쪽 곡강(曲江) 일대가 시끌벅적하다. 진사(進士) 급제자를 위한 축하연회가 잇따라 열리기 때문이다. 응시생 수는 수천 명이나 합격자는 서른 명 남짓이어서 장안의 권문세가와 부자들이 아들딸을 이끌고 급제자들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어 더 혼잡하다. 이 곡강연(曲江宴)에서 사윗감을 고르기 위해 몰려든 고관대작들의 화려한 수례행렬은 점입가경이다. 이날 장안의 다운타운에는 불합격자 수천 명의 넋두리와 눈물도 끊이지 않았다.

과거(科擧)는 유가(儒家) 지식인사회에서 부귀공명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흙수저에게 과거급제란 로또 대박보다 더한 기회여서 '개천 용' 일화도 비일비재했다. 재수, 삼수는 기본이고 10년, 20년 심지어 평생을 시험에 매달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갈수록 과거시험과 재력(財力) 사이의 상관관계도 높아졌다. 권력계층 자식들의 '아빠찬스'는 금상첨화였다. 거듭된 낙방 끝에 승려로 전락한 한산(寒山)은 "백도 없고 돈도 없어 과거에 떨어졌다"고 탄식했다. 


헬조선에서 안정적 먹거리인 '철밥통' 인기
최고의 엘리트집단 공무원 숫자 점점 늘어

 

중국발 과거문화는 몇 백 년 후에 한반도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젊은 청춘들 중에서 과거시험에 매달렸다 낭패한 과거폐족들이 수두룩했다. 오죽하면 과거급제를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기 위한 등용문(登龍門)에 비교했겠는가.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사법고시 도전 9년 만에 겨우 합격했단다. 과거제의 유산인 사법, 행정, 외무고시 중에서 현재는 5급 공무원을 선발하는 행정고시만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외무고시는 2013년에, 사법고시는 2017년에 각각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 대신 교사임용고시, 7·9급 공무원고시, 군무원고시, 소방공무원고시, 경찰고시 등 낯선 용어들이 새로 생겨났다.
 

사시, 행시 합격자 출신들이 자존심 상해(?)할 수도 있지만 중·고등학교 교사 선발시험인 교사임용고시는 경쟁률이 치열하다. 해마다 대학들이 캠퍼스 입구에 그 학교 출신의 교사임용시험 합격자 이름을 적은 현수막들을 내걸 정도이다. 각종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들도 늘고 있다. 100만명 이상의 취업준비생들 중에서 공무원 임용시험에 매달리는 수험생 숫자가 30% 이상이다. 9급 공무원 시험에만 합격해도 대견해 보인다. 2020년 국가직 9급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무려 37대1인 것이다.

헬조선(?)에서 입신양명은 언감생심이고 안정적인 먹거리 확보가 최대 관건이라 철밥통의 인기를 실감한다. 세계화와 디지털화, 탈산업화로 양질의 일자리들이 대거 사라진 것이 결정적 이유이다. 빈곤과 복지문제 연구로 2015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더틴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는 세계화와 기술변화를 주도한 세력들을 악당으로 규정했다.

100세 시대의 현실화는 또 다른 변수이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현재 1세기 이상 생존한 노인이 남성 4천404명, 여성 1만4천560명 등 총 1만8천964명이라고 밝혔다. 100세 이상 인구수가 2012년 1천201명에서 7년 만에 무려 15.8배나 증가한 것이다. 의료선진국인 한국이 조만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장수국의 타이틀을 거머쥘 개연성이 크다.

12년만에 14.8%↑… 文정부 9.10%로 최고
민간일자리 창출보다 혈세로 고용확대 집착


최고의 엘리트집단인 공무원 숫자의 점증에 눈길이 간다. 국가직, 지방직을 합한 전체 공무원 숫자가 노무현 정부의 95만6천93명에서 이명박 정부는 1.06%, 박근혜 정부는 4.13%, 문재인 정부는 9.10%를 각각 증원한 결과 작년 6월 기준 공무원 숫자가 109만7천747명으로 증가했다. 12년 만에 공무원 숫자가 14만1천654명(14.8%)이 늘었는데 문재인 정부의 실적이 가장 두드러진다.

소득이 증가할수록 국민들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커져 정부예산 등이 점차 증가하는 법이나 너무 심했다. 정부가 양질의 민간일자리 창출에 팔을 걷어붙이기보다 혈세로 땅 짚고 헤엄치는 식의 고용 확대에만 집착하는 인상이니 말이다. 증세(增稅)는 언감생심이고 유사 이래 가장 풍요롭고 자유분방하게 성장한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자)가 박봉(薄俸)에다 경직적인 관료문화에 뼈를 묻을지도 의문이다. 2021취업시즌에 즈음한 단상(斷想)이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