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루' 이극로 선생(1893~1978)은 언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뚜렷한 족적(足跡)을 남겼다. 우리 말글에 깊은 애정으로, 한글 지킴이를 자처했다. 1929년 '조선어사전' 편찬 집행위원(뒷날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사전'), 1930년 한글 맞춤법 제정위원, 1936년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지냈다. 1942년 7월 조선어학회 사건에서 최현배, 이윤재와 함께 핵심 인사로 지목돼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제 쓰는 조선 글씨는 조선 임금 세종이 서력 1443년에 대궐 안에 정음궁을 열고 여러 학자로 더불어 연구하신 끝에 온전히 과학적으로 새로 지어진 글씨인데 서력 1446년에 안팎에 되었습니다. 이 글씨는 홀소리 11자와 닿소리 17자로 모다 28자올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어 음성자료 중 일부다. 한글 창제의 시원(始原)을 말하는 이극로 선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쩡쩡 울린다. 그는 일제 탄압으로 조선어가 사라질 것을 걱정해 1928년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구술 아카이브 스튜디오에서 육성 기록을 남겼다. 우리 글의 역사와 자모음 결합으로 이뤄지는 음성체계를 담았다. 이 귀중한 사료는 2011년에야 발견됐다. "세상 사람들은 한울님은 공경할 줄은 알되 사람은 공경할 줄은 알지 못합니다. 얼마나 까꾸로 된 생각입니까"란 말에는 우리 말 변천사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9일은 제575돌 한글날이다. 정부는 '2021 한글주간 행사'를 통해 다양한 비대면 행사를 개최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해외문화홍보원도 세계 주요 27개국, 32개 재외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한국문화 퀴즈대회를 비롯해 한국 문학 소개, 한국영화제, 케이팝 공연을 진행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빅히트하면서 외국인들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말한다고 한다. 추억의 '달고나'를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핥고 있다. 우리 말, 우리 글이 없었다면 K-문화도 없었을 것이다.
표음문자 한글은 대한민국 대표 문화유산이다. 28개 자모음 결합만으로 오만가지 글자를 조합해 낸다. 숭례문(남대문)이 아닌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이 국보 1호가 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아니'하는 백성을 어여삐 여긴 세종의 애민(愛民) 정신이 세계사적 걸작을 만들어냈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