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판이 난데없는 무속 논쟁으로 시끌벅적하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유승민 전 의원이 윤석열 전 총장에게 '천공 스승 멘토설'을 제기하고 이재명 경기지사 캠프에서도 주술 관련 의혹에 대해 공세에 나서자 갑자기 사주명리학·관상·풍수·무속 등이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세상은 첨단 과학기술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지만, 유약한 인간의 본성은 변함이 없다. 특히 총선과 대선 같은 정치의 계절이나 사회가 불안정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면 초현실적인 주술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러고 보면 정치와 주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조선왕조에서도 풍수 같은 지력(地力)에 의지하여 왕가의 안정을 모색하는 이른바 '혈식구원'의 방략을 적극 수용하였다. 조선 말기 때는 명성 황후 민비가 진령군이라는 무속인에게 의지하여 국기가 흔들린 적이 있었다. 진령군은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장호원으로 피신한 민비에게 거의 정확하게 환궁 날짜까지 예언을 하여 민비의 신임을 얻어 왕가와 국정을 좌우하였다. 이 당시 중국에서 처음에는 재신으로 숭앙받던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인 관우는 점차 신격이 높아져 20세기 초반 마침내 새로운 옥황상제로 취임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명군에 의해 들어 온 관우 신앙이 민비와 진령군에 의해 전국 방방곡곡에 관우 사당이 신축된 덕분이다.
이뿐 아니라 제정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도 혈우병을 앓고 있던 황태자를 치료해준 심령술사 라스푸틴에게 빠져 지냈다. 미국에서도 레이건 전 대통령이 점성술사의 자문과 조언에 따라 국정 운영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세상에 충격을 안겨준 바 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정 혼란을 겪고 급기야 탄핵 사태까지 치달은 아픈 기억도 있다.
세상에는 여전히 합리적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해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힘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오지 않았고, 결정되지 않았기에 미래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현재의 노력과 관성이다. 과도한 욕망과 두려움을 떨쳐버린다면 주술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진다. 막스 베버의 말대로 현대사회는 '탈주술화'한 시대이며, 또 그래야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