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향토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조례가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향토문화유산은 국가나 인천시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가진 사료(史料)를 의미한다. 인천 각 군·구청은 향토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기 위해 '향토문화유산 보호 조례'를 잇따라 제정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중구, 미추홀구, 서구, 부평구 등이 이 조례를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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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구의 미쓰비시 줄사택 모습. 2020.10.25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부평구는 일제강점기 전범기업 미쓰비시(삼릉·三菱)의 흔적인 '미쓰비시 줄사택' 등 지역 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료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해 2019년 향토문화유산 보호 조례를 제정했다.

이어 지난해 연구용역을 통해 문화재 가치가 있는 42개 사료를 '관리대상'으로 정해 올해 8월 처음으로 민간을 상대로 향토문화유산 등록 신청을 받았지만 이달 6일 마감일까지 한 건의 신청도 없었다.

개항기 유적이 많은 중구는 2016년 조례를 제정했으나 한국 최초의 극장인 '애관극장'을 비롯해 관리대상 330여 건 중 단 한 건도 향토문화유산으로 등록하지 못했다. 인천 서구도 2015년 이 조례를 만들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천 지자체들 보존 목적 제정
부평구 마감일까지 신청 '0건'
중·서구 1건도 등록하지 못해
소유주와 분쟁 우려 '소극 행정'
"리모델링·재건축 막을 길 없어"


각 군·구청은 문화재로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부동산과 동산 등을 소유하고 있는 민간이 향토문화유산 등록을 신청하면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각 군·구청은 향토문화유산 관리대상을 정해 놓고도 민간에 공개하지 않아 해당 사료들의 소유주조차도 이를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동안 단 한 건의 등록 신청도 이뤄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지자체는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따를까 봐 향토문화유산 지정을 원치 않는 소유주와의 분쟁을 우려해 관리 대상 공개에 소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더해 현행 조례에는 문화재 등록을 유도할 만한 인센티브 조항이 없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의 경우 소유주에게 세제혜택(재산세 감면, 상속세 징수 유예 등)을 주고, 보존 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인천시등록문화재는 등록문화재 대지 건폐율을 완화해주고 관리·보호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유인책이 있다.

인천의 한 구청 관계자는 "현재로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도 소유주가 리모델링을 하거나 재건축을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희환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문화재 등록을 하는 소유주에게 국가 유공자에 준하는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각 지자체도 제도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 소유주들조차 제도(조례)를 모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