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소녀 역사(力士) 박혜정은 매 대회 새 역사(歷史)를 써내려간다. 고된 훈련으로 보낸 시간은 손바닥 굳은살로 오롯이 남았다.
'제2의 장미란', '역도 요정'은 안산공고 역도부 박혜정을 담기에 부족한 수식어다. 생애 첫 전국체전에서 용상 한국신기록, 합계 한국주니어신기록을 냈다. 탈고교급을 넘어 국가대표 그 이상이다. 박혜정은 고등부 대회에서 2인자(대구체고 김효언)와 50㎏ 이상 합계 무게를 쳤다. 인상 124㎏에 용상 166㎏. 합계 290㎏은 2020 도쿄올림픽 은메달(합계 283㎏, 영국 에밀리 캠벨)보다 좋은 기록이다.
시상대에 오른 박혜정은 아이돌 이달의 소녀 츄의 전매특허 '깨물하트'와 엄지와 검지를 다소곳이 모은 손가락 하트, 승리의 V자를 연신 그리며 바벨을 들어올릴 때와 다른 '상큼미'를 내뿜었다.
알감자 같은 손등에 가려진 손바닥은 곳곳이 굳은살로 가득했다. 금메달 3개를 목에 걸고 취재진 앞에 등장한 박혜정은 손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뒤집어 내보였다. 살이 찢어졌다 다시 엉겨붙은 흔적까지 있었다.
박혜정은 역도 선수로서 치명적인 가루 알러지가 있다. 역도 선수는 바벨을 들 때 마찰력을 높여 미끄러짐을 방지하려면 탄산마그네슘을 손바닥에 묻혀야 한다.
손이 건조해지고 갈라져 터지더라도 고통을 참아내며 봉을 잡는다. 경구약(먹는 약)을 잘못 썼다간 도핑에 걸릴 수도 있어 치료조차 못한다. 낮에 혹사당한 손바닥에 밤엔 바세린을 바르는 자가치유를 했다. 대한역도연맹 경기규정을 보면 손가락 첫마디까지 오는 특수장갑을 낄 수 있다. 하지만 박혜정은 물론 선수들 대부분 손목 보호대와 허리 보호대를 찰 뿐 장갑은 끼지 않는다.
박혜정은 "가루 알러지는 어쩔 수 없는 장애물"이라며 "나중에는 손에 바세린을 발라도 간지러웠다. 도핑 때문에 다른 약도 못 먹고 힘들지만, 많이 좋아졌다. 코로나19로 훈련을 많이 하지 못했어도 선후배들의 응원과 코치님들이 다독여주신 덕분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혜정은 전국체전 용상 2차 시기에서 한국신기록을 쓰고, 3차 시기는 포기했다. 3차 시기 기권에 대해 장내에선 혹시 부상을 당한 것 아닌가 하는 염려의 탄식이 나왔다. 박혜정은 우려를 이내 불식했다. 오는 11월 세계주니어역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몸 보호 차원에서 기권했다.
평소 연습 땐 300㎏을 너끈히 들어 올린다. 한국을 넘어 세계 제패의 꿈을 이룰 날이 머지 않다. 2020 도쿄올림픽은 포인트가 부족해 출전하지 못했지만, 이 기세라면 2024 파리올림픽에선 장미란의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한국에 금메달을 선사할 수 있을 전망.
경기 내내 박혜정은 안산공고 팀 선수들의 응원을 받았다. 박상민 코치와 선수들은 바벨 앞에 선 박혜정의 이름을 연호하며 '가자'와 '화이팅' 구호로 기적을 썼다. 하나 된 힘으로 안산공고는 박혜정이 3관왕이 되기 전날 이미 다관왕을 배출했다.
김이안(64㎏급)은 본대회 첫날인 8일 인상 84㎏ 용상 108㎏ 합계 192㎏으로 3관왕을 차지했다. 역도 마지막 날인 11일 현재까지 안산공고가 따낸 메달은 총 12개다. 지난 9일엔 윤예진(76㎏급)이 인상 86㎏ 은메달, 용상 109㎏, 합계 195㎏ 동메달 2개, 10일엔 김정민(73㎏급)이 인상 118㎏ 용상 155㎏ 합계 273㎏으로 동메달 3개를 추가했다.
안동/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