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가 황해도까지 가면 좋겠어요. 저기 두고 온 가족에게 나 잘 있으니 이제 서로 애끓지 말자고 딱 그 한마디 하고 돌아오면 되는데…."
14일 오전 10시께 실향민 20여 명을 태운 '강화 망향배'가 인천 강화군 석포리선착장을 떠나 교동대교 아래에 서자 누군가는 목놓아 '어머니'를 불렀다.
실향민들은 직선으로 불과 8㎞ 떨어진 북녘땅을 앞에 두고 저곳에서 자신을 기다렸을, 어쩌면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떠올렸다.
실향민 채재옥(90)씨는 맞은편에 위치한 황해도 일대 산을 가리키면서 "털미산에서 채취한 싸리로 통발을 만들어서 온종일 고기 잡던 기억이 난다"며 "조금 더 가면 온천물이 샘솟는 천대산이 있는데,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그 물에 손이라도 담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북한 황해도 연백군에서 함께 초등학교를 다녔던 유병찬(86)·이인배(84)·황영석(86)씨는 어느덧 반백의 노인이 됐지만, 먼발치에서만 고향을 바라봐야 했다.
유병찬씨는 1·4후퇴 이후 황해도 연안군 증산도에서 물이 빠지면 연결되는 반이도를 건너 배를 타고 석모도로 왔다. 당시 '몇 달 있으면 다시 올라가겠지'라고 생각해 단벌 차림에 쌀 다섯 되만 챙겼는데 속절없이 70년이 흘렀다.
이북에서 피란민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부리나케 가족들 생사를 물어보러 다녔으나, 집이 폭격을 맞아 다 타버렸다는 얘기를 끝으로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는 "가끔씩 꿈에 어머니와 두 살 터울의 누님과 누이가 함께 나오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서 그런가 어느 때부터 내가 알던 그 얼굴이 맞나 싶어서 낯설기도 하다"면서 "그래도 꼬박 수십 년을 기다렸으니 이제 조금 더 기다리면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인천시와 통일부는 15일까지 황해도가 보이는 강화군 교동 해역에서 '강화 망향배'를 시범 운항해 선상 강연·공연 등 한국전쟁 실향민의 아픔을 달래는 행사를 연다. 남북 평화를 바라고 한강 하구 남북 공동 이용에 대한 염원을 담자는 취지다.
이날 망향배 시범 운항 행사에 참석한 인천시 조택상 균형발전정무부시장은 "많은 분의 노력과 헌신 덕분에 그동안 요원했던 남북 관계가 풀리고 봄이 오는 것"이라며 "여러분이 남북 평화의 길잡이로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4일 일방적으로 단절했던 남북통신연락선을 55일 만에 복원했다. 우리 정부는 종전 선언을 포함해 남북, 북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전반적인 협의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