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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민교협 회원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그리스로 출국했다. 학창 시절 벌였던 학교폭력이 공개되었고, 그로 인해 국내 배구계에서 퇴출된 데 따른 선택이었다. 과거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는 없었고, 해외 리그 진출 과정 또한 편법에 가까웠다. 아직 내용이 명확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나, 이다영은 결혼 생활에서도 폭력적인 성향을 지속하여 드러냈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을 때 함께 거론된 인물이 그들의 어머니 김경희 씨였다. 김경희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세터로 활약했던 바 있다.

김경희가 소환되면서 불거진 의혹은 두 가지이다. 첫째, 과거 배구선수 시절 다른 선수들은 모두 집단체벌로 피멍이 들었는데 김경희만 멀쩡하였다. 이로 인해 김경희는 감독과 함께 체벌에 가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둘째, 과거 김경희는 두 딸의 시합을 학부모 자격으로 참관하였는바, 그가 팀 전술에 개입하고 요구하면 시합에 즉각 반영되었다는 이른바 비선실세 의혹이다. 출국장에서도 김경희는 기삿거리를 만들어 냈다. 고개 숙인 쌍둥이에게 "고개 숙이지 말고 걸어, 끝까지 정신 차려야 한다"라고 소리치고, 기자들에게는 "누군가는 나나 얘들에게 진실을 물어봐야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항변하였다고 한다.

성적 집착 과열경쟁은 교육열 포장
문제생기면 입시 방식만 뜯어고치고
학생부 인성관련 허울 서열화 여전


쌍둥이 배구선수 사건을 지켜보며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인지 교육이라고 하면 명문대학교로 진학하는 시스템 및 행위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니 교육 문제가 불거지면 대학 입시의 방식만 이리저리 뜯어고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녀의 성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비정상 수준으로 과열된 입시 경쟁이 교육열로 포장되는 것이다. 인성 함양이 중요하다고 하여 학생부 종합전형에 봉사 활동을 포함시켰으나,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대학 서열화 질서는 여전히 견고하며, 학생부전형은 보다 상위 순위의 대학에 들어 가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는 양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분야의 특수성으로 따진다면 배구선수 쌍둥이의 학교 생활은 대한민국 교육의 일반적인 현실과 양상이 다소 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력만을 절대 기준으로 앞세우고, 대결에서 승리 지상주의로 기울어 있는 방향은 대동소이하다. 명문대를 나온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라고 하여 고매한 인품으로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전문성과 학연을 자본 삼아 법 테두리를 넘나들며 제 이익 추구에 몰두하는 꼴을 심심찮게 드러내는바, 이는 지켜야 할 자리에서 일탈해 버린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출국장에서 보여준 김경희의 자신감과 억울함은 이와 닿아있는 게 아닐까. '사소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두 딸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준의 실력을 갖추었고, 실력에 따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차등은 당연하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능력이 떨어지는 다수가 벌이는 마녀사냥에 불과하다는 것.

학부모 김경희 행동과도 맞닿은 듯
교육은 무엇인가 사회적합의 필요


일찍이 공자는 학문의 목적은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있다고 하였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덕성을 쌓아나가는 것이 학문의 본령이라는 것이다. 그 반대말이 위인지학(爲人之學), 남에게 드러내 보이고 과시하기 위하여 하는 학문을 이른다. 물론 지금 우리가 고색창연한 공자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수신(修身)의 요소를 배제해 버린 교육의 문제점은 분명하다. 실패할 경우 쌍둥이 배구선수의 또 다른 사례가 속출할 것이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체온을 잃어버린 전문가나 길러내게 될 따름이다. 그러한 전문가는 통계와 그래프의 수치로써 인간을 이해하고, 가시적인 성과 축적을 위하여 눈 가린 경주마처럼 질주하게 마련이다.
 

교육이란 자녀를 좋은 학원에 맡기고, 일류 대학교에 진학시키는 방식으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학원·학교는 물론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늘상 이어져야 하는 것이 교육이다. 대학교에서도,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더라도,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이뤄져야 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 속에서 각자가 스스로 일신우일신 변화시켜 나아갈 방향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본질적인 질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리라 싶다.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민교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