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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0년대 평택 '고박사 냉면'은 냉면 애호가들의 성지였다. 소 사태와 양지살 부위를 뭉근하게 삶는다. 기름기를 빼고 동치미국물을 섞은 육수는 담백하고 시원해 해장에도 그만이었다. 얼음 띄운 육수 한 사발이면 머리가 맑아지고 속이 편해진다는 애주가들 탄사가 쏟아졌다. 매일 드나드는 찐 단골도 여름철엔 줄을 서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했다.

1980년대 중반, 손님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고양이 고기를 첨가한 육수가 감칠맛 비법이란 거다. 경찰까지 나서 육수 성분을 조사했으나 터무니없는 낭설임이 드러났다. 당시 고박사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하는 해프닝이다. 1973년 개업 이후 상호를 '고복수 냉면'으로 바꿔 3대가 48년째 명성을 잇고 있다.

경인일보 유튜브 '백년가게 시리즈'가 10개월 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유명 식당부터 이발소, 도장가게, 사진관, 태권도장, 한복집 등 20개 업소를 소개했다. 코로나19로 경험해보지 못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응원 메시지를 담았다. 주인공들은 남다른 노력과 열정, 끈기와 집념으로 30년 이상 자리를 지켜온 지역의 대표 터줏대감들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하는 백년가게는 업력 30년이 넘는 도소매·음식업을 하는 소상공인이 대상이다. 한우물 경영, 집중경영 등 지속 생존을 위한 경영비법을 전수받아 집념과 끈기로 고유의 사업을 장기간 계승·발전시키는 장인들을 장려·육성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전국 백년가게는 1천22개, 백년소상공인은 564개에 달한다.

정부가 '위드 코로나'를 위한 전(前) 단계 시행에 들어갔다. 거리두기 4단계인 수도권은 저녁 8인까지 모일 수 있고, 예식장을 비롯한 다중집합장소 제한 인원도 늘렸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영업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며 여전히 불만스런 표정들이다. 이미 한계상황을 넘어섰다는 아우성이 커진다.

백년가게 시리즈 주역은 IMF 사태와 조류 독감, 메르스 사태를 이겨낸 불굴의 용사들이다. 노포(老鋪)란 남이 가기 싫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일이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그들마저 현 상황이 버겁다고 한목소리다. 백년가게도 버티지 못하는 건 최악의 상황이다. 오늘도 새벽부터 불을 밝혔을 이 땅의 자영업자들에 응원을 보낸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