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인들이 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된 요인 중 하나는 이 영상물이 놀이라는 점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유희 본능과 추억을 자극하는 각종 놀이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456명의 게임 참가자 중 최후에는 한 사람만 살아남는 데스 게임이다.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긴장감도 고조된다. 여기에 실종된 형을 찾기 위한 황 형사의 추적이 병행되면서 미스터리의 요소도 갖추고 있다. 유희 본능과 향수에다 서바이벌의 긴장감, 미스터리의 호기심까지 버무린 융합 서사인 셈이다.
규칙위반 처단·비리 묵인·폭력 살인도 방관
'권력의 선택적 정의' 극중 현실 공정치 않아
이 드라마는 놀이와 현실을 병치하면서 놀이 속에 숨겨져 있던 현실이라는 지옥도를 제시하고 있다. 게임의 참가자들은 잔인한 게임이 두려워 현실 세계로 나갔다가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게임장으로 되돌아온 사람들이다. 놀이는 전쟁이나 현실에서 기원하거나 모방한 경우가 많지만 놀이에서 그 기원을 환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희본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관습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놀이와 현실의 불가역성은 부정된다. 명함의 전화번호로 놀이판과 현실 세계를 오고 가는 '통로'가 열리자 현실보다 더 리얼한 현실의 미니어처가 펼쳐진 것이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몽드를 비롯한 세계의 언론들은 '오징어 게임'을 한국사회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심각한 빈부격차,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웃도는 가계부채, 여야 유력 대선 주자들에 대한 청년들의 냉소적 무관심 등이 오징어 게임 열풍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노동 현실은 더 잔혹하다. 최근 고층빌딩의 유리창을 닦던 두 명의 노동자가 잇달아 추락사했다. 2020년도 통계에 의하면 산업재해로 2천62명이 사망했고 그중 882명은 사고로 숨졌다.
한국의 노동 현실이 '잔혹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 열풍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훨씬 뜨겁다는 사실이다. 이 드라마가 한국사회의 반영물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공정과 평등을 내세우는 세계의 허상을 날카롭게 풍자함으로써 보편적 공감을 얻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임의 관리자인 프런트맨은 공정과 평등을 내세우지만 극중 현실은 불평등하다. 구슬을 다 잃었는데도 살아남는 특권층이 있는가 하면 등장인물은 가면을 쓴 지배자와 가면 없는 민낯의 관리대상으로 구분된다. 가면을 쓴 자들도 오렌지색 옷과 검은 옷, 황금가면으로 신분이 구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이다. 계층을 넘나드는 사다리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구조적 모순속 욕망·생존의 노예로 죽어가
검투사 경기장 '콜로세움'과 얼마나 다른가
극중 현실은 공정하지도 않다. 관리자들은 게임의 규칙을 위반한 자는 가차 없이 처단하지만 정작 장기매매와 같은 비리는 묵인하고 경쟁자들 간의 폭력이나 살인도 방관한다. 권력의 선택적 정의를 꼬집고 있다. 타인의 시체를 딛고 최종 승자로 남으라는 잔인한 능력주의가 게임 메이커들의 교시이다. 게임이 잔혹할수록 지배자들(VIP)의 쾌락은 배가된다. 최대 다수의 행복이라는 공리주의도 최소한의 분배정의도 없이 한 사람의 승리만 인정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미시적 평등만 바라보며 구조적 모순을 보지 못하는 세상에서 욕망과 생존의 노예가 되어 죽어가는 개인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다. 이 풍자의 칼끝은 무한경쟁사회를 향한 것이다. 당신들의 세상은 2천여년전 상대방을 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검투노예들의 경기장, 콜로세움과 과연 얼마나 다르냐는 질문이 그것이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