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화성의 자택에서 배드파더스 대표 활동가로 지낸 구본창(58)씨를 만났다. 구씨는 양육비 책임을 저버린 '나쁜 부모'를 처벌하는 일을 정부에서 하게 됐다며 줄곧 우려를 표하면서도 "행복하다"고 했다.
무거운 짐 하나 덜어낸 것만으로도 행복
"3년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양육비를 미지급한 '나쁜 아빠'들로부터 살해 협박도 여러 번 받았죠. 다 감내해야만 했는데 무거운 짐을 하나 덜어낸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구씨는 배드파더스 활동을 시작한 뒤부터 2년째 수차례 법정을 드나들고 있다. 구씨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혐의로 지난 2019년부터 법정에 섰다. 법원은 당시 검찰의 구씨에 대한 정보통신법상 명예훼손 약식기소를 직권으로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이 사건 1심 공판에서 배심원들은 구씨에 대해 전원 무죄 평결을 했다. 그러나 그는 검찰 항소로 오는 29일 항소심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구씨는 애초에 처벌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구씨는 "처음부터 처벌을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라며 "문제는 부모들이 얼굴 등 신상이 공개돼야만 양육비를 돌려주는 경우가 많고 실효성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토록 험난한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씨는 은퇴 후 떠난 필리핀에서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2세) 아이들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알 수 없는 '분노감'이 3년간 일 지속하게 만들어
"서울에서 강사 생활을 끝내고 은퇴 한 뒤 필리핀에 갔어요. 부모에게 월 30만원의 양육비를 받지 못해 밥을 굶는 코피노 아이들을 봤죠. 속에서부터 무언가 끓어올랐고 알 수 없는 '분노감'이 지난 3년간 이 일을 지속하게 만든거죠."
그는 곧바로 필리핀에서 '코피노 아빠찾기' 단체를 설립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소송비를 지원하는 단체다.
단체를 운영하던 중 배드파더스 운영자들이 구씨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두려웠어요. 한국으로 간 코피노 아빠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 적이 있는데 법적 다툼을 하더라도 양육비를 받아줄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죠.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처벌이 없었기 때문인데 법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배드파더스 일원이 됐어요."
배드파더스가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한 사례만 1천여건을 웃돈다. 구씨는 "신상공개 사전 통보만 했는데도 해결 된 사례가 700건이 넘는다"며 "신상 공개 후 양육비를 지급한 사례도 220건에 달한다"고 했다.
이제는 정부에서 배드파머스 일을 대신한다. 여성가족부가 다음달부터 양육비 미지급자들에 대한 신상 공개를 결정한 것이다.
배드파더스 사이트 문 닫지만 계속 활동할 것
하지만 구씨는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고 했다. "여성가족부에서 양육비 미지급 부모를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이름, 주소, 직업, 나이 정도였다"며 "동명이인을 구분하려면 얼굴 공개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육비 채무자가 특정돼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야만 신상공개에 대한 실효성이 있다는 것이다. 구씨는 "양육비 미지급자 중 위장전입도 많고 회사도 아닌 회사원, 상업 등 직업을 언급하는 수준에서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라며 의구심을 표했다.
정부 정책에 대해 한껏 질타를 쏟아내던 그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껏 들뜬 듯 보이기도 했다.
구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문을 닫지만 계속 활동할 것"이라며 "양육비해결총연합회를 통해 계속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