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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생 인천시체육회 회장
"전쟁통에도 열렸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을 이유로 지난해 제101회 전국체육대회가 취소되자 체육계에서는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었다. 설상가상 2021년 제102회 전국체전마저 고등부 대회로 축소해 개최하기로 결정하자 체육인들의 상실감과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체육인들 사이에서 '전국체육대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개최해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철칙이다. 전국체전 역사가 이를 증거 한다. 1920년에 제1회 대회가 열렸으니 전국체전은 올해로 역사가 102년이 됐다. 100년이 넘는 동안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전국체전이 열리지 않은 건 단 8차례밖에 안 된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체육회를 강제 해산했던 1938년부터 1944년까지(제19~25회, 7차례), 6·25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제31회, 1차례) 대회가 전부였다. 1953년에 휴전이 됐으니 전쟁 첫해만 빼놓고 계속해서 전국체전이 열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쟁통에도 열렸다'는 체육인들의 탄식은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지난해 취소 올해는 축소 체육계 깊은 탄식
무관심의 절정 엘리트체육의 민낯도 드러나


우여곡절 끝에 제102회 전국체육대회가 지난 10월8~14일 경상북도 구미에서 열렸다. 미증유의 코로나 팬데믹은 이번 전국체전의 풍경과 일상을 낯설게 바꿔 놓았다. 일반부와 대학부 경기가 취소된 채 고등부만의 반쪽짜리 대회로 치러졌다. 선수들을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해 현장에 파견된 17개 시·도체육회 관계자들은 의무적으로 3일에 한 번씩 지정된 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무관중으로 치러진 경기장은 썰렁 그 자체였다.

코로나 팬데믹은 그동안 누적돼왔던 전국체전, 나아가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무엇보다 전국체전의 흔들리는 위상과 체전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의 절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지만 잇달아 대회가 취소되고 축소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전국체전은 꼭 개최해야만 하는 대회가 아니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대회로 추락하고 말았다. 100년이 넘는 역사와 최대 규모의 종합스포츠대회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이다. 전국체전의 인기가 시들해진 지 오래라곤 하지만 '체전을 정상적으로 개최해야 한다'는 체육인들의 절규에는 메아리조차 없었다.

고등부 경기만 열린 덕분(?)인지 '선수층 부족'을 겪고 있는 학교 엘리트 체육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인천시만 하더라도 정석항공과학고 핸드볼팀과 계산고 하키팀은 후보 선수가 아예 없다 보니 경기 내내 선수교체조차 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던 전통의 농구 명문 인성여고, 부평여고 하키팀, 공항고 요트팀 등은 선수 부족으로 대회에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전쟁통에도 열렸는데…" 상실·무력감까지
100년 역사 걸맞은 정체성찾기 '뉴노멀' 숙제


이제 100년의 역사를 가진 전국체전과 엘리트 체육은 한 세기를 뒤로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할 때가 됐다. 코로나 팬데믹을 기회로 삼아서 변화된 시대와 세상에 맞게 '뉴노멀'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게 바로 코로나 팬데믹이 체육인들에게 던져준 숙제이다.

우선 전국체전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고 위상과 권위를 높여 나갈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이미 지나간 100년에 매몰 되기 보다는 다가올 100년과 시대의 변화에 조응해서 대회의 성격을 재규정해 나가야 한다. 전국체전이 국민들 관심 밖에 있는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하는 우리들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혁신하고 또 혁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체육계 내부뿐 아니라 외부의 다양한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학교 체육의 위기는 인천체육은 물론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의 근간을 모조리 흔들 수도 있다. 스포츠클럽 활성화 등 학교 체육을 발전시킬 수 있는 해법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인천시체육회는 학교 체육 활성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인천시, 인천시교육청과 함께 노력해나가야 하겠다.

끝으로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이번 전국체전에서 불꽃 같은 투혼을 발휘해 준 인천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규생 인천시체육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