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주요 인물은 무영과 영인이다. 선후배 사이인 둘을 이어주는 끈은 환경운동이다. 현재 동화작가인 무영은 환경운동을 그만둔 지 오래지만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동화를 집필 중이다. 그러니까 무영은 활동가로서의 운동은 접었으나 환경 문제를 저버리지는 못한 그런 인물이다. 영인은 무영의 영향을 받아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둘의 대화가 때로는 시적인 대사로, 때로는 프로파간다의 대사로 진행되며, 그 중간중간에 무영이 창작 중인 동화가 극중극 형식으로 펼쳐진다.
연극 호모 플라스티쿠스는
심해 생물로 'PET 조각 발견' 소재
연극 제목에 나오는 플라스티쿠스는 필리핀과 일본 사이에 있는 마리아나 해구에서 발견한 한 생명체에 붙인 학명 '에우리테네스 플라스티쿠스'에서 왔다. 이 생명체는 갑각류의 일종으로 해저 6천900m 심해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놀라운 것은 그 소화 기관에서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 조각이 발견된 것이다. 해저 6천900m라니. 바야흐로 플라스틱의 전 지구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갈매기, 펭귄, 거북, 고래에 그치지 않고 에우리테네스 플라스"티쿠스에 이르기까지 지구를 플라스틱이 점령한 것이다.
새롭게 발견한 생물종에 플라스티쿠스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 만큼 지구의 생태계가 재앙으로 치닫고 있지만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처음부터 버리기 위해 만들어진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하는 동안 풍요와 발전을 노래하기에 급급했다. 그 성장의 바퀴를 멈출 수 없는 소비사회에서 동화 작가인 무영은 나약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가 연극이 말하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로 묶인 존재라는 메시지의 요약이다.
만약 연극 '호모 플라스티쿠스'에서 다음에 소개할 일화가 없었다면 동화 작가 무영만큼이나 막막했을 것이다. 무기력 상태에 빠진 동화 작가 무영이 창작하고 있는 동화의 세계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동화는 플라스틱을 뚫고 자라난 꽃에 대한 이야기이다. 온통 플라스틱이 점령한 플라스틱 세상에서 마침내 꽃이 피고, 그 꽃에서 향기가 피어난다는 동화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플라스틱에 점령당한 지구 암시
그속에서 피어난 꽃에서도 향기가
디스토피아 세계 그려… 경종
여기서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말은 플라스틱을 뚫고 자라난 꽃이라는 표현이다. 이 말은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에서 왔을 것이다.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은 비자이 프라샤드가 엮은 책의 제목이다. 한국에 2018년에 번역되었다. 이 책에서 서문을 쓴 비자이 프라샤드가 소개하고 있는 시가 있다. 바로 '꽃과 메스꺼움'이다. 이 시는 2016년 리우 올림픽 개막식에서 낭송되기도 했다. 시의 마지막 부분은 "예쁘지 않아도 꽃은 꽃이다/ 아스팔트, 지루함, 혐오, 증오를 헤치고 꽃이 피어났다"로 되어 있다. 이 시에서 영감을 받아 비자이 프라샤드는 책 제목을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으로 지었다. 이 책의 부제는 '자본주의 시대 기후 변화에 대한 단상'으로 되어 있다. 부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기후 위기의 원인을 자본주의에서 찾고 있는 여러 글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한 포럼에서 비자이 프라샤드는 아프가니스탄의 소식을 전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절반이 절대 빈곤 상태에 놓여 있으며, 국민 70%가 전기를 쓸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그가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에서도 일관되게 주목한 것은 기후 위기로 가장 먼저 쓰러지는 사람들이었다. 지구 한편에서 풍요와 발전을 노래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쓰러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암울한 상황에서도,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자이 프라샤드는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을 노래하는 사람과 그 목소리를 연결하고 있다.
연극 '호모 플라스티쿠스'에서 플라스틱을 뚫고 자라난 꽃을 그리고 있는 동화의 세계는 그러므로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의 세계와 그 꽃을 노래하는 사람과 그렇게 만나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 더미 속에서, 플라스틱 더미를 뚫고.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