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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표 논설위원
2006년 7월16일, 이기수 여주군수는 남한강 제방과 군청 상황실을 오가며 밤을 지샜다. 취임 3주가 지나지 않아서다. 강 수위가 한계치인 11m에 근접하면서 저지대는 이미 잠겼고, 전역으로 번질 기세였다. 다행히 장대비는 잦아들었고, 다음날 범람 위기에서 비켜났다. 그해 여름 여주엔 홍수경보와 주의보가 연이어 발령돼 공포지수가 극에 달했다.

경기도 변방 출신으로, 도청 국장과 고양 부시장을 지낸 이기수는 민선 군수에 당선돼 금의환향했다. 30년 넘는 공직 경험을 살려 고향에 봉공(奉公)하자 다짐했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팔당상수원을 위한 거미줄 규제에 묶여 지역경제는 엉망이었다. 지역을 옥죄는 수도권정비법과 상수원보호법은 기초단체장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철벽이었다. 수년 주기(週期) 홍수피해는 설상가상. 1978년, 1990년 대홍수는 중·장년 주민에 악몽이 됐다. 


4대강 정비사업후 여주에선 수해걱정 덜어
주민 "환경부, 보철거 수순 밟으면 강력투쟁"


여주 읍내를 관통하는 남한강 제방은 낮고, 하상이 높아 우기에 취약했다. 지천과 지류로 역류해 저지대가 잠기는 수해가 반복됐다. 군수가 됐어도 해결 방도가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언론 인터뷰에서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주민들이 해마다 물난리를 걱정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수해 현장을 찾은 야당 대표와 도지사에 홍수방지 예산을 달라 사정하면서 안되면 군비를 몽땅 쓰겠다며 생떼를 썼다.

2년 뒤 이명박 정부는 22조원이 넘는 예산으로 4대강 정비사업에 나섰다. 남한강엔 이포보, 여주보, 강천보가 설치됐다. 강 준설로 골재(모래) 5천만㎥가 채굴될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포보~강천보 구간에서만 3천100만㎥를 파냈다. 사업이 끝난 2013년 이후 여주 관내에 대규모 침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지역에선 수해 걱정은 덜었다고들 한다.

이달 중순, 강천보 앞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환경부 장관 방문에 맞춰 주민과 지역단체가 시위를 벌인 것이다. 환경부는 이날 DB하이텍, OB맥주, SK하이닉스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한강수계 대형 민간취수장 3곳의 취수시설 개선을 위해 공동 노력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현장에 모인 '보 해체 반대대책위' 주민들은 보 철거를 위한 수순이라 의심한다. 진입로와 주변 곳곳엔 '한강 3개 보 완전 개방 결사반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렸다. 박광석 대책위원장은 "12만 시민과 수도권 젖줄인 한강상수원 보호를 위해 남한강 3개 보를 개방하거나 철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장관 앞에서 "기업을 동원해 해체 수순을 밟는다면 강력 투쟁으로 막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경·시민단체 "수질만 나빠졌다"고 비판
과학 뒷전 좌우·진보 나눠 10년 넘게 반목만


4대강 사업은 진작에 끝났는데 찬반 논쟁은 식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친여단체와 학계를 동원, 촛불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을 강행했다.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는 대역사(大役事)를 임기 내 해치우는 무리수를 뒀다. 네 차례나 특감한 감사원은 콘크리트 속 철근 숫자까지 들여다봤다. 시공업체 간 입찰 부정이 확인돼 형사 처벌됐다. 수질을 상시 감시하는 '첨단로봇 물고기'는 사기로 판명돼 자취를 감췄다.

환경·시민단체는 수해방지엔 효과 없고, 수질만 나빠졌다 비판한다. '녹초 라떼'는 오염의 상징어가 됐다. 유시민 작가는 "4대강은 단군 이래 최대 멍청한 토목사업"이라 비난했다. 문재인 정부는 수위를 한층 높였다. 전국 16개 보 가운데 5곳을 완전 또는 부분 해체하거나 상시 개방하기로 했다.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번엔 환경·시민단체를 앞세웠다는 비판을 받는다. 남한강 보 지킴이들은 환경부-기업체 협약이 보를 헐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 보고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선진국 진입을 위한 필수코스라 했다. 현 정부는 토건세력의 적폐로 본다. 과학은 뒷전이고 좌·우, 진·보가 10년 넘게 반목했다. 보 해체 예정지마다 주민이 가로막고, 진보단체는 채근한다. 여주에선 놀란 주민들이 '보 해체 어림없다'고 지레 설레발이다. 정부가 보 해체 시기를 어물쩍 쓱 미뤘다. 반대 진영과 비판여론을 잠재울 실리와 명분을 찾지 못한 게다. 차기 정부에서도 '물의 전쟁 시리즈' 시즌 3이 개봉될 판이다. 딱한 노릇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