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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 사람 보통 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26일 영면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7년 12월 대선 유세장에서 반복했던 호소다. 전두환 군부의 권력 찬탈이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졌듯이 종말도 한순간이었다. 박종철 치사 사건, 6월 민주항쟁, 대통령 직선제 개헌, 13대 대선으로 이어진 격동의 1987년은 전두환 정권에 조종을 울렸다.

노태우는 정권의 종말에 휩쓸리는 대신 전두환에게 직선제개헌을 요구하는 '6·29 선언'으로 기사회생했다. 전두환과 짜고 기획한 선언이라는 증언과 폄하는 뒷담화일 뿐이다. 김영삼, 김대중의 분열로 13대 대통령이 된 그에게 '보통 사람'은 쿠데타 세력과의 결별을 의미했다.

전두환을 백담사에 유배 보내고 광주청문회와 5공 청문회에 세웠다. 언론 자유화로 전국에서 신생 언론사 창간이 줄을 이었다. 코미디언들이 대통령을 '물태우'로 풍자했지만, 그는 이 별명이 좋다고 반겼다. 약속한 민주화 조치를 대부분 이행했다. 87 개헌체제의 기반을 다져 김영삼, 김대중 민간정권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가교가 됐다.

외교적 업적은 대단했다. 1988년 7·7선언을 통해 남북 간 제한 없는 인적, 물적 교류원칙과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개선을 선포했다. 진보진영 대북정책의 근간이 만들어졌고 남북 동시 유엔가입도 실현했다. 소련, 중국과의 연이은 수교로 외교 지평은 북방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원죄는 깊었다. 김영삼 정부 때 제정된 5·18특별법으로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비자금 축재로 국민적 분노를 샀다. 그나마 전두환과 달리 그는 잘못을 인정하고 속죄했다. 병상의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 노재헌은 광주 5·18묘역에서 참회하고, 수천억원의 추징금도 완납했다. 마지막 유언도 "저의 과오들에 대한 깊은 용서를 바란다"였다.

정부는 어제 국무회의에서 노태우의 국가장을 치르되 국립묘지 안장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 시절의 업적은 인정하되, 내란범죄자의 국립묘지 안장을 불허한 법은 지킨다는 얘기다. 보통 사람을 염원한 노태우의 희망은 절반만 이루어진 셈인가.

작가 이병주는 "일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산하' 서문) 노태우의 원죄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추상같겠으나, 그의 업적은 신화처럼 은밀하게 이어질 것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