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3101001011400051962
수도권매립지 3-1 공구(사진 위)와 영흥 에코랜드 예정지. /경인일보DB,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우리나라의 폐기물 처리 선진화 정책은 유럽 선진국들에 비해 10년 이상 뒤져있다.

스위스는 2000년 모든 가연성 폐기물을 법적으로 소각해야 한다는 법령을 제정, 직매립을 금지하고 있다.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은 폐기물 내 유기 물질의 함량을 나타내는 총유기탄소(TOC)와 발열량 등 구체적인 매립 금지 항목과 기준치를 제시하고 있다.

이들 유럽 국가가 추구하는 폐기물 정책의 목표는 쓰레기 발생 감량과 '매립 제로화'다.

환경부가 발간한 환경백서(2018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1992년 이전에는 재활용이나 소각, 직매립 등 기본적인 쓰레기 처리 원칙조차 없었다. 환경적 측면보다는 '폐기물 안전 처리'를 제1의 목표로 두고 쓰레기를 처리했다. 

'폐기물 처리 선진화' 유럽 대비 뒤져
스위스, 2000년 '가연성 모두 소각' 법령
독일 등 총유기탄소·발열량 제한
이들 국가 정책목표는 '매립 제로화'
1992년 이후 재활용촉진법이 발효되면서 포장재 발생 억제, 일회용품 규제와 같은 기본적인 규제 방안이 마련됐으며 1995년 쓰레기 종량제를 전격 시행하면서 쓰레기 감축을 위한 각종 제도가 시행됐다. 2007년 이전까지 국내 폐기물 처리 정책은 쓰레기가 발생한 이후의 사후관리에 초점을 두고 모든 제도가 시행됐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기후 위기, 에너지 자원 고갈 문제 등 환경 관련 의제가 급부상했다. 국내에서도 폐기물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성이 제기됐고 2016년 자원순환 정책 추진을 위한 '자원순환기본법'이 제정됐다.

쓰레기를 단순한 사후 처리 대상이 아닌 일종의 자원으로 판단해 생산부터 소비, 관리, 재생 등 여러 복합적인 과정이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틀이 마련된 것이다.

청라소각장1111
청라 소각장. /경인일보DB

유럽 주요 국가들은 폐기물을 자원으로 순환시키기 위해 각 관리 단계에서 인센티브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일부 나라는 지원 정책과 별개로 매립세를 시행해 매립 제로화 정책 실현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이사장은 "유럽 각국들의 경우 차이는 있지만 쓰레기 배출부터 소각, 매립 등에 이르기까지 자원순환 정책에 입각한 폐기물 정책을 실현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자원순환기본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유럽과 비교해 봤을 때 세밀하지 않은 것은 물론 실행 주체인 각 자치단체의 관심과 의지도 상대적으로 낮아 갈 길이 먼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원순환 정책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에너지 회수와 소각 등에 필요한 기본 인프라 구축이 필수 요건이다. 쓰레기를 감량하고 자원화·재활용해 소각이나 매립을 100% 하지 않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립을 최소화하기 위한 인프라 확충이 우선돼야 한다. 
국내 1992년까지 소각·직매립 무원칙
1995년 '쓰레기 종량제' 시행후
2016년에야 '자원순환기본법' 만들어
사후처리 대상 아닌 '자원'으로 판단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각장과 같은 자원화 시설이 혐오시설로 각인돼 신규 건립이나 증설에 큰 어려움이 있다. 자원순환 과정에서 주요한 고리 역할을 해야 할 이런 인프라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자원순환 정책을 펼칠 수 없다.

인천시가 2025년 수도권쓰레기매립지를 종료하고 소각재만 처리하는 자체 매립지를 짓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또한 쓰레기 감량 정책과 함께 소각장 신증설이 우선돼야 실현할 수 있다.

쓰레기를 줄이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소각'이다. 가연성 폐기물은 묻지 않고 태워야 한다. 환경 선진국들은 쓰레기 소각률을 최대한 높여 매립률을 낮췄다.

스위스는 2015년 쓰레기 매립률 '0%'를 달성했고, 일본은 2019년 생활폐기물 직매립률을 1%대로 낮췄다.

프랑스 파리시의 경우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4년 유럽 최대 폐기물 처리 조합인 'SYCTOM(Syndicat Intercommunal de Traitement des Ordures Managers)'를 설립했다.

SYCTOM은 파리시와 인근 지자체들로 구성된 조합으로 이들 도시에 거주하는 약 600만명이 버리는 매년 230만t의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으며 반입된 폐기물은 대부분 증기와 전기로 재활용하고 있다.

이 조합에 속한 이쎈느(Isseane) 소각시설은 파리 한복판인 센(Seine)강변에 인접해 있지만 '연기 없는 소각시설'로 불릴 만큼 오염 물질이 거의 나오지 않고 쓰레기 수거 차량 진입로는 지하화해 인근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송도 자원순환센터
송도 자원순환센터의 전경. /경인일보DB

우리나라는 매일 약 3만t의 폐기물이 직매립된다. 1년이면 무려 1천100만t에 달한다. 이를 소각하면 부피를 80~90% 줄일 수 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소각장 신증설은커녕 기존 소각장마저 다른 곳으로 이전하라는 압력에 시달린다.

인천연구원 윤하연 연구기획실장은 "도시 자원순환 인프라는 우리가 집을 지을 때 꼭 설치해야 하는 화장실과 같은 존재"라며 "집을 지을 때 화장실을 넣을지 말지 고민하지 않듯 소각·자원화시설 등과 같은 자원순환 인프라도 도시가 기능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란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원순환 인프라 구축과 함께 쓰레기 배출 자체를 줄이는 것이 폐기물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쓰레기가 배출되기 전에 선제적·예방적 방안을 적용해 쓰레기 배출 자체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배출했다면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에너지회수·소각시설 인프라 필수
'혐오시설' 인식에 신규·증설 어려움속
인천 '2025년 매립지 종료'로 정책 선도
"환경부·다른 지자체 뒤따르는 중"
여기에 시민들이 참여할 여지가 있다. 쓰레기를 태우거나 묻는 것은 자치단체나 정부의 역할이지만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재활용하는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해 소비자단체 중심으로 벌어진 '스팸 뚜껑 반납 운동'이라든가 음료팩에 일회용 빨대 부착을 금지하는 '빨대 어택' 캠페인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이사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배달 음식, 택배 등이 급증하면서 포장재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이를 엄격하게 규제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환경특별시'를 선언한 인천은 2025년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위해 소각장 신증설을 비롯해 소각재만 묻는 친환경 매립지 건설, 일회용품 줄이기 캠페인 등 전국 자치단체 중 가장 선도적으로 폐기물 처리 선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소각장, 친환경 매립지 건설 등에 따른 갈등도 크지만 대한민국 국민 절반이 버린 쓰레기가 묻히는 수도권매립지가 있는 인천이 아니면 이런 후진적 매립시스템을 끝낼 수 없다.

윤하연 연구기획실장은 "서울과 경기도는 지금 있는 수도권매립지를 그대로 사용하고 싶고 이게 더 효율적이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인천시가 매립지 종료를 주장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선진 폐기물 정책을 앞서 추진하면서 환경부와 다른 자치단체들도 인천을 따라오고 있다. 인천이 매립지 종료를 주장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폐기물 정책은 수도권매립지에 기대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2021103101001011400051965

/김명호·김성호기자 boq79@kyeongi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110310100101140005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