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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59년 12월14일. 일본 니가타항에서 두 척의 대형 선박이 238가족 975명을 태우고 청진항으로 향했다. 한국 정부와 국민의 강력한 북송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후 25년간 일본인 배우자 등 6천800여명을 포함하여 9만3천340명이 북한으로 갔다. 집단 이주에 가까운 대규모 북송 이후 북한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북·일 간의 단절된 관계로 정확한 실상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일본이나 한국으로 탈북한 북송 관련자들이 '인권침해와 북한에 의한 국가 유괴 행위'를 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0월14일 일본 내 탈북자들이 북한 정부 등을 상대로 한 재판이 도쿄지법에서 열렸다. 탈북자 5명은 북송에 참여해 북한으로 건너간 뒤 수십 년 만에 탈출해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총액 5억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북송 관련 탈북자는 일본에 약 200명, 한국에 400명 정도가 있다고 한다. 북한 정부를 피고로 한 일본의 재판은 매우 이례적이다. 탈북자들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한 일본 최초의 소송은 북송의 실태와 책임을 묻는 역사적 재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59년 첫 238가족 975명 청진항行
未승인국 우리시각 '귀국' 아닌 '북송'


이 사건의 복잡성은 명칭에서도 나타난다. 일본 내에서는 '북송'이 아니라 '귀국사업'이라고 한다. 한반도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보면 '귀국'이다. 하지만 한국의 시각에서 보면 당시 미승인 국가인 북한으로 가는 것은 '북송'에 해당한다. 일본 정부나 국제적십자가 행한 주체의 시각에서는 '사업'이다. 하지만 재일동포의 귀국 의사를 강조하면 '운동'이 된다. 일본에는 1950년대 대부분 남한 출신인 60여만명의 동포들이 남아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의 대립은 일본 내 조총련과 민단의 대결로 격화되고 있었다.

당시 기시 노부스케 내각은 재일동포를 일본에서 몰아내고 싶은 속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일본적십자위원회와 국제적십자위원회를 끌어들였다. 협상도 일본 정부가 아니라 제네바가 중심이었다. 당시 귀국 문제는 전쟁 이후 철수나 거주지 선택의 자유와 관련된 글로벌 이슈였다. 일본 군국주의가 패전하면서 사회주의에 우호적이었던 일본의 지식인, 문화인, 정치인, 언론들도 인도적 조치를 명분으로 이를 지지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모두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 행동이었고, 북송자들이 겪은 인권침해에 공범 관계가 되었다.

판결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시효와 제척기간이라는 시간의 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부를 피고로 하는 재판이 일본 법원에서 열릴 수 있는가 하는 재판 관할권 문제도 있다. 주권국가는 다른 나라의 재판권을 따르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상 주권면제원칙이 문제다. 그러나 중대한 인권침해를 받은 피해자는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권 면제 예외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일본은 미승인국인 북한에 대해서 민사재판권의 면제를 인정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논리에 입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재탈북자 日 200명·韓 400명
그들은, 北 피고로 '유괴행위' 주장
내년 3월 도쿄지법 결심 재판 주목


물론 일본 법원이 북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해도 북한이 이에 대응할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다만 현재 북한에 있는 북송자들이 일본에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주권 면제 여부는 한일 간에도 매우 첨예한 문제다. 주권 면제가 쟁점이 된 것은 위안부 소송이다. 지난 1월 한국 법원은 주권 면제의 예외를 인정해 일본 정부를 피고로 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일본에 배상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4월 다른 재판부는 주권 면제를 인정해 일본 정부를 피고로 하는 소송을 재판할 관할권이 없다고 판단하여 소송 자체를 각하하였다.

만약 일본 법원이 인권침해에 대해 주권 면제의 예외를 인정하여 북한에 책임을 묻는다면 한국이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일본에 대해 위안부 등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게 된다. 재판 결과는 한일 간 위안부 소송이나 강제징용의 배상 문제는 물론 향후 '북일 교섭'에서 일본 정부와 기업의 배상책임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2022년 3월23일로 예정된 도쿄지법의 결심 재판이 주목되는 이유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