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도들은 성인(聖人)의 이름으로 세례명을 짓는다. 신심이 깊은 신도들은 자기 생일보다 세례명 성인이 사망한 날을 영명축일로 더 의미있게 기린다. 그런데 축일(祝日)이 없는 성인들도 많아, 가톨릭교회는 11월1일을 '모든 성인 대축일(만성절·萬聖節)'로 정했다. 만성절 전야제가 핼러윈(Halloween)이다.
핼러윈은 그리스도교에 흡수된 켈트족의 새해 전야 축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열 달짜리 달력을 쓴 고대 켈트족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0월31일 새해 전야제를 성대하게 열었다. 이날 지하 세계의 문이 열리는데 조상의 영혼뿐 아니라 불청객인 악령들도 올라온다. 조상의 영혼은 기리고 악령은 피해야겠으니, 기괴한 분장으로 악령인 척 위장했다. 악령의 침입을 피하려 순무의 속을 파내 불을 밝힌 등을 대문 앞에 두었으니, 미국 핼러윈의 상징인 호박등, '잭 오 랜턴(Jack O'Lantern)'의 유래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첫날인 오늘을 앞둔 지난 주말 핼러윈이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이태원·홍대거리를 비롯한 전국의 유흥 명소들을 채운 핼러윈 인파가 위드 코로나 방역을 위협했다는 비판이다. 핼러윈을 외국의 듣보잡 명절로 비하하는 네티즌들의 분통도 잇따랐다.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 개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함께 모여 노는 유전자를 통해 문화와 사회를 만들어왔다. '구실'과 '거리'만 있으면 모여 노는 건 인간적 본성이다. 오징어 게임과 달고나가 서구에 퍼지듯, 핼러윈을 이태원에서 즐기는 건 이 때문이다. 백신으로 집단면역 기준에 도달하자마자 위드 코로나 방역으로 전환한 것도, 마냥 가두어 둘 수 없는 인간 본성 때문 아닌가.
위드 코로나 개시 시점이 공교롭다. 이달 수능이 끝나면 전국의 수험생들이 시험지옥을 벗어나 거리로 쏟아진다. 망년회,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등 그동안 코로나로 강제 격리돼 유희를 상실했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게 분명하다. 각종 스포츠 현장과 공연 무대도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룰 테다. 그때마다 국민 탓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1년 10개월 동안 코로나에 갇혔던 놀이의 욕망이 거세게 분출할 것이다. 예상했던 사태이고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할 일이다. 애꿎은 핼러윈이 욕먹을 일은 아니지 싶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