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진영 대 진영의 첨예한 대결이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적대적 공생으로 정치적 이기주의를 충족해 온 양대 진영은 보수와 진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념과 가치를 지향하는 세력이 아니다. 오로지 이익과 이해를 공유하는 직업적 정치집단일 뿐이다. 대선 국면에서 유권자의 기억에 남는 잔상은 무엇인가.
정치기술자들 갈라치기로 지지자 결집 나서
유권자는 적대적 정치 공고화 수단으로 전락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사건과 고발 사주 의혹사건이 대선 이슈를 빨아들이고 검찰 수사가 대선 정국을 지배하는 선거가 되고 말았다. 이는 여야 정당들에서 다른 후보보다 흠결이 많고 문제적 이슈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주도권을 차지하고 유권자 역시 적대와 증오의 정치에 편승한 지지 성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거공간에서 정책과 이념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
선거에는 정당, 정책, 인물, 구도 등의 변수가 승패를 좌우한다. 어떠한 변수가 보다 지배적인가는 선거 당시의 정치상황과 각 요인 간의 관계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선거구도, 이른바 프레임은 선거 전체를 관통한다. 내년 대선의 프레임은 정권교체론 대 정권유지론이다. 정권 획득을 두고 쟁투를 벌이는 권력투쟁이 선거이기 때문에 지극히 정상적 구도이지만 재작년 조국 사태를 거치고 이후 적대주의와 정치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분위기는 대선을 더욱 적대와 증오의 정치로 몰아가고 있다.
문제사건에 대한 무수한 보도, 가설과 시나리오,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 후보들의 위선과 견강부회, 빈곤한 역사의식 등이 선거를 왜곡하고 표심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중도지대와 제3지대가 시동을 걸었다고는 하지만 중립적 지대에서 중도 가치를 주장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최근 정당 창당을 선언한 김동연 전 부총리 등이 마지막까지 양대 카르텔 세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현실정치에서의 효능감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역시 불투명하다.
치명적 약점을 가진 후보들에 대한 지지가 견고한 것도 한국 정치가 갖는 부정적 정체성이다. 흠결이 오히려 지지를 결집하고 팬덤을 만들어내는 정치의 역설은 유권자조차 선거공학에 익숙해져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미래비전·사회적 합의 이끌 지도자 뽑는 선거
물질적 이익과 권력 탐닉 무리들에 의해 날조
선거가 다가올수록 진영정치는 강화될 것이며 검증되지 않은 보도와 주장들이 유권자의 표심을 파고들 것이다. 적대적 공생에서는 혐오와 배제가 정치의 동력으로 기능하고, 확증편향이 지지를 공고히 하는 정치문법이 지배적 규범으로 작동된다. 정치기술자들은 갈라치기를 통하여 상식과 보편을 헤집고 지지자를 결집해 나간다. 유권자는 적대적 정치를 공고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적대적 공생을 숙주로 삼아 경제적 이익과 권력을 탐닉하는 정치를 마감하지 않으면 선거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보루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미래비전과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 낼 수 있는 지도자를 가리는 선거가 물질적 이익과 권력을 탐닉하는 무리들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 명시적으로 헌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기에 촛불을 들고 나올 명분도 없다. 반지성적이고 비민주적 언술과 술수가 선거를 지배하고 있다. 대장동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의 대상, 독재자 전두환 시대를 미화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사과의 당사자가 양대 진영을 지배하는 선거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