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묶인 매듭이 이제야 조금 풀리나 봅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때 미군의 폭격으로 희생되고 고향을 잃은 인천 월미도 주민들을 대표하는 한인덕 월미도원주민귀향대책위원장은 2일 월미공원에서 열린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지기까지 71년이 걸렸다.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2008년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을 '진실'로 규명하고 희생자 위령 사업, 원주민 귀향 등을 권고한 지 13년 만이다.
한인덕 위원장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진행된 일이었으면서도 우리의 아픔을 나라가 인정하고 달래주기까지 참으로 오래 걸렸다"며 "매듭을 푸는 과정이 시작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인천시 차원 원주민 보상 조례 시행
碑 제작과정 '미군 문구' 민감 논란
정부 보상 불발… 치유 현재진행형
한국전쟁 초반 전세를 역전한 인천상륙작전 닷새 전 미군은 사전 정지작업을 위해 상륙지 월미도에 네이팜탄을 퍼부었다. 주민 100여 명이 희생됐고, 마을과 숲이 완전히 파괴됐다.
이후 월미도가 군사기지가 되면서 살아남은 주민들은 고향까지 잃었다. 주민들이 말한 '매듭 풀기'는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한 명예 회복과 귀향 지원이다. 월미도 원주민에게 보상하는 특별법은 두 차례나 국회에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됐고, 2019년에서야 인천시 차원에서 조례를 제정해 주민 생활 안정을 돕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권고가 직접 이행된 것은 이번 위령비 건립이 처음이다.
그러나 국가가 아닌 인천시 차원에서 이행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위령비 제작 과정에서 '미군'을 명시할지를 두고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사건 50년이 지나도 '미군'이란 문구 하나로 민감해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폭격 피해 책임에 대한 한미 공동 조치나 귀향은 여전히 첫발을 떼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위령비 제막식을 찾은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미군 폭격이나 적대 세력에 의한 피해 보상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피해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보상하기 어렵다는 판결이 나온다"며 "그런 판결에 대해선 유감"이라고 말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해 '실미도 사건'을 비롯한 인천 과거사 사건 조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진실 규명을 하고자 하는 새로운 사건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정부가 진실이 규명된 과거사에 화해와 보상 문제에 대한 권고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실행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월미도 폭격 사건의 책임과 치유 문제도 현재 진행형이다. → 관련기사 3면([다시 마주한 인천 과거사·(下)] 아직도 묻혀있는 인천 과거사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