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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시대 상징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골칫거리'로 남곤 한다. 노후화하면서 흉물이 된 곳을 누구나 좋아할 공간으로 만들긴 어려운 까닭이다.

하지만 운행이 중단된 기차역을 활용해 세계적인 미술관이자 도시의 랜드마크로 만든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 폐쇄된 발전소의 외관을 존치해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만들어 낸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 등 성공 사례도 많다.

수원시도 산업유산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장안구 대유평공원과 111CM(커뮤니티)이 그 주인공이다.
조선부터 근대까지 산업을 꽃피운 중심지 '대유평'
대유평 인근은 현재 화서역을 중심으로 많은 주민이 생활하고 있는 터전이지만 수십년 전 만해도 허허벌판인 곳이었다. 시작은 조선시대 정조대왕 시기로 거슬러 오른다.

정조는 1795년 농경 시설 확충과 화성 축조의 재원 마련을 위해 대유둔전을 조성했다. 대유둔전에서의 원활한 농업을 위해 만석거와 축만제 등 수리시설도 함께 만들어졌다. 이후 20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유평 넓은 뜰은 조선 후기 농업개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첫 변화는 전후 산업화와 함께 찾아왔다.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담배를 생산하는 연초제조창을 조성했다. 시나브로, 88, 라일락, 한라산, THIS 등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의 담배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전성기엔 1천500명이 일하며 연간 1천100억 개비를 만들어냈다.

1971년 4월 가동한 이 공장은 32년 뒤인 2003년 3월14일 문을 닫았다. 이후 20년간 방치됐고, 흉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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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연초제조창 모습.

수원시는 2017년 대유평 지구단위계획을 세우며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개발이익으로 자연을 접하며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들자는 계획이다. 지역의 역사성과 접근성, 주변 환경과의 어우러짐 등의 조화를 이루며 민관 협력 사업의 완성도를 높여 대유평공원과 111CM이 들어왔다.

111CM,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다
1일 개관한 111CM은 옛 연초제조창 건물의 일부를 개조해 수원시민들에게 환원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이름은 '정자동 111번지'란 주소에서 따왔다.

곳곳에 남은 파이고 긁힌 흔적은 건물의 역사를 보여준다. 콘크리트가 노출된 9m 높이의 천장은 그 자체로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를 구현했다. 벽에는 통유리로 개방감을 더했다.

내부에서 어느 방향을 바라보더라도 공원과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와 탁 트인 시야가 펼쳐지는 것도 장점이다. 2층엔 야외데크가 마련돼 공원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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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기념 전시.

A동엔 베이커리카페와 취미생활을 즐길 공간이 있다. 2천333㎡ 규모의 B동은 상황에 따라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갤러리 공간, 라운지와 커뮤니티, 창의예술실험실, 다목적실, 교육실 등을 결합하거나 나눠서 사용할 수 있다.

 

 

1971년 문 연 '연초제조창' 20년간 방치
2017년 市 지구단위 계획 세워 '새단장'
베이커리 카페 등 마련 문화공간 '111CM'
나들마당·생태연못 등 꾸민 '대유평공원'
1단계 사용승인 2단계 2023년 완료 예정


A·B동 사이엔 1970년대 수원의 모습과 연초제조창의 역사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영상 전시 기기가 있다. '대유평의 기억'이란 제목의 영상은 ▲연초제조창 건립사(1967~1971) ▲연초제조창 30년(1970~2004) ▲버려진 건물의 재생(2019~2021) ▲산업유산에서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2021~) 등 시기별로 나눠 대유평을 보여준다.
 

여유와 힐링을 선물하는 대유평공원
11만3천757㎡ 규모의 대유평공원은 개발사업부지의 정중앙에 있다. 2단계로 나눠 조성 중인 이 공원은 지난달 28일 1단계 9만6천여㎡ 구간을 먼저 사용 승인했다. 나들마당, 생태연못, 생태계류 등이 조성돼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숲속놀이터, 왕벚꽃길, 물가쉼터, 전망데크, 스테핑가든과 자작나무숲 등이 들어서 있다.

특징 중 하나는 녹지가 끊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로 위로 둔덕을 조성해 바람언덕과 지붕정원을 꾸몄다. 대형 공동주택단지와 연결되는 부분은 계수나무길과 야생화원으로 만들었다. 이 공원에만 교목 2천999그루, 관목 6만7천960그루, 지피 15만3천600포기가 식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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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평공원과 111CM 전경.

2단계 1만7천여㎡ 면적은 오는 2023년 지하주차장과 공원이 결합한 형태로 만들어진다.뿐만 아니라 향후 2단계 공원사업이 진행되면 북쪽에 위치한 서호천과 남쪽에 위치한 숙지공원을 연결하며 수원시 내 도심의 녹지축을 연결하는 역할도 기대된다.

지역 주민들이 교통 흐름에 방해받지 않고 공원길로 서호천부터 대유평공원을 거쳐 숙지공원까지 걸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111CM 개관을 기념해 지난 1일 진행된 토크콘서트에서 "건물과 장소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문화"라며 "담배공장의 한 터를 남겨 놀라운 변신을 한만큼 인문도시와 지속가능발전도시의 상징적인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시민과 함께 나머지 색을 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준석·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