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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국 한국은행 인천본부장
2007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여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세계화폐를 목표로 비트코인을 개발하였다. 발행 초기에는 비트코인 6단위로 피자 1판을 구입하였다는 일화가 있으나 이후 급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에도 대체로 상승세를 보여 최근에는 1단위당 7천만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비트코인의 정체에 대한 논란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하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필자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일단 비트코인이 상품이 아닌 것은 명확하다. 어떤 물건이 상품으로서 가치를 가지려면 일정한 사용가치나 효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으며 보거나 듣는 즐거움도 없다. 그렇다고 다른 상품을 만드는 원부자재나 자본재로 사용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즉 사용가치가 전혀 없으며 이에 따라 상품으로 볼 수 없다. 일부에서는 비트코인을 금과 같은 상품 기반의 실물자산에 비유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둘은 기본 성격이 다르다. 금은 기본적으로 장신구 등의 사용가치를 기반으로 가치가 형성되는 반면 비트코인에는 이러한 사용가치의 기반이 전혀 없다. 만일 금이 번쩍거리지 않고 보기 흉한 물건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안전자산으로서 투기적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를 생각해보면 양자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결국 비트코인은 상품이 아닌 만큼 상품의 사용가치에 기반한 실물자산으로 보기도 어렵다. 


상품으로서 사용가치 전혀 없어
'실물자산'으로도 보기 어렵고
이자 배당같은 현금 흐름도 없어


그렇다면 금융자산으로 볼 수는 있을까? 금융자산은 그 가치가 미래의 현금흐름에 의해 결정된다. 이론적으로 주식은 미래의 배당을, 채권은 미래의 이자 및 원금을 현재 가치로 할인한 값으로 결정되는데 이를 내재가치라고 한다. 물론 자산의 실제 가격이 현금흐름에 기반한 현재 가치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금흐름이 전제되어야만 가치가 성립한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이자나 배당 같은 현금흐름이 전혀 없으며 이에 따라 내재가치도 제로이므로 이를 일반적인 의미의 금융자산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화폐이다. 실제 중남미 국가 엘살바도르는 최근 비트코인을 공식화폐로 도입한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화폐로 작동하기에는 여러 가지 결함이 있다. 우선 비트코인은 가치의 변동이 너무 심해서 일반적인 지불수단이나 가치저장의 기능을 수행하기가 곤란하다. 물론 추후 비트코인의 가치가 안정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 가격 상승에 따른 이익 추구 가능성이 사라지면 기존 화폐보다 사용이 불편한 비트코인을 누가 가지려 할지 의문이다. 보다 치명적인 결함은 바로 공급이 영구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에서 모든 경제 활동은 화폐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만큼 경제가 성장하면 통화량도 이에 맞추어 적절히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공급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어 경제성장에 따라 필요한 화폐수요에 전혀 대응할 수가 없다. 만일 주택을 구입하거나 사업을 시작하려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비트코인이 기본 화폐로 작용하는 경제에서는 이러한 신용창출에 의한 통화량의 추가 공급이 불가능하다. 결국 이론적인 측면에서도 비트코인이 현대경제의 화폐가 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내재가치 '제로' 금융자산도 아냐
공급 영구적 제한은 치명적 결함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는 조그만 별에 사는 비즈니스맨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멀리 보이는 별들에 번호를 붙여서 자기 소유로 간주하고 은행에 맡기거나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과거 비트코인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비트코인도 마치 안드로메다 성운에 있는 별들에 번호를 매기고 이를 사고파는 것과 유사하며 이에 따라 조만간 이런 불합리가 사라지면서 가격이 폭락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러나 이후 비트코인이 사라지기는커녕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가격도 수 배 이상 급등하였다. 이로 인해 세상일이 모두 합리적 추론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여전히 비트코인의 정체와 가격형성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수십년 후 비트코인이 필자의 처음 예상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현재와 같이 특수한 자산으로 계속 거래될지, 아니면 세계화폐로서 기존의 화폐를 모두 대체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서명국 한국은행 인천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