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사에 1인자의 위세를 빌려 권력을 농단하는 두 유형이 등장한다. 먼저 지록위마(指鹿爲馬)형이다. 진시황이 사망하자 환관 조고는 술책을 부려 장자인 부소를 자결시키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옹립한 뒤 권력을 장악한다. 어느 날 호해 앞에서 사슴을 끌고 와서는 말이라 한다. 황당한 호해가 주변 신하에게 말이 맞느냐 하니 대부분 말이 맞다 했다. 강직한 신하 몇몇이 사슴이라 했지만 바른말 한 죄로 모두 조고에게 죽음을 당했다.
전국시대 초나라 선왕은 재상 소해휼에게 병권을 맡겼다. 당연히 초나라 변방의 소국들이 소해휼을 두려워했는데, 선왕만 까닭을 몰랐다. 한 신하가 호랑이를 속여 뒷배로 세운 여우의 우화로 설명해주니,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유래다. 조고는 황제 위에 군림했고, 소해휼은 왕의 권력을 대행했다. 어린 호해는 무능했고, 자기 권력의 크기조차 모른 선왕은 어리석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대장동 비리 핵심인사인 유동규의 공직시절 행적이 가관이다. 성남시시설관리공단(성남도시개발공사 전신) 기획본부장 시절 직원들에게 수시로 충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예능 프로그램 광팬인지 기관 워크숍 때마다 직원들에게 바다 입수를 강요하고, 냉면 사발을 채운 충성주를 마시게 했단다.
눈을 제때 안 치웠다고, 주차 민원을 거부했다고 고위직원을 해임하거나 빙상장 매표소로 좌천시켰단다. 이런 식으로 해임한 직원들이 20여명이라니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의 지록위마를 견딜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의 뒤에 호랑이가 있다고 믿은 탓일 테다. 지금 같으면 직장폭력으로 유동규 본인이 잘렸지 싶다.
작은 아파트단지 리모델링 추진위원장이 고작인 사람이 공직에 들어와 대장동 비리 설계를 주도하고 이익을 나누는 과정에서 공모자의 뺨을 후려쳤다. 이런 사람을 모신 공직자들의 굴욕감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유동규는 경기도 유력기관인 경기관광공사 사장까지 지냈다.
검찰과 경찰의 대장동 수사가 변죽만 울린다는 여론의 조롱도 유동규 압수 수색부터 시작됐다. 여론의 성화에 못이겨 압수 수색에 나선 검찰 앞에서 유동규는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검찰은 안 찾았고, 찾아낸 경찰은 열어 볼 기미가 없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검찰과 경찰이 한없이 작아진다. 유동규 뒤에 아직도 호랑이가 버티고 있는 것인가.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