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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 어느 제국주의보다 참혹했던 일본 강점기의 야만을 딛고 해방을 이룩한 뒤, 불가능하게 보였던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했다. 분명 우리는 놀라운 성취를 이룩했으며,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변화와 성장을 이룩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그런 성취에 전혀 걸맞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우리의 삶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흘러넘치고 있다. 세계 최저 출산율과 최상위권의 자살률은 이런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청년들은 불안한 현재와 더 나빠질 것만 같은 미래에 갇혀 파편화되고 있다. 


日강점기서 해방~경제성장~민주화
지난 100년 한국은 엄청난 성취에도
최저 출산·최상위 자살률 등 불행해


경제적 성공에 비해 턱없이 낮은 사회정의와 함께, 이 사회를 위한 규범과 지향성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런 현실은 충분히 예견되는 사실이다. 해법은 무엇일까? 19세기 유럽세계의 상황과 그들이 걸어갔던 역사에 어떤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의 성공과 해외에서 개척한 식민지를 착취함으로써 그 어느 시대와 비교할 수도 없는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그 가운데에서도 후발 주자였던 독일은 문화와 사회는 물론, 거의 모든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전적으로 19세기 초엽 대학과 교육체제를 개편함으로써 문화적 혁신을 이룩함으로써 가능했던 일이었다. 아쉽게도 사회적 모순과 정치적 격변을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두 차례에 걸쳐 너무나 참혹한 세계 전쟁을 겪게 된다. 이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사회가 온갖 사회모순과 불평등, 폭력과 무지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초래된 현상이었다. 파시즘의 광기가 싹 트고, 허무주의의 검은 그림자가 사회를 휘돌고 있었다. 식민지에서 행했던 폭력과 불의, 야만이 거울상이 되어 유럽사회를 휩쓸고 있었기에 어쩌면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은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느 길을 가야할까? '어쩌다 맞이한' 풍요와 경제적 성과에 눈이 멀어 내적 모순과 외적 독주를 외면할 것인가? 멀지 않은 곳에 파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지금 사회는 분열되어 있고, 청년 세대는 희망을 잃고 있으며, 나이 든 사람들은 너무도 심각한 불평등에 허덕이고 있다. 법과 언론에 대한 불신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심각하다. 특권을 독점한 계층이 자본과 권력을 카르텔화하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잊어버린 시민들은 현재의 삶에 매여 있으며, 가야 할 길을 말해야 할 계층은 그 카르텔에 편입하기 위해 안달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규범과 지향성을 말해야 할 그들은 침묵하고 있다.
 

말해야 할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대학은 이런 사실을 망각한 채 다만 전문지식 집단의 밥그릇이 되어 버렸다. 85%에 달하는 사학재단은 단기적 운영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미래 교육을 책임져야 할 교육부는 자신들의 권리와 자리 지키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사회는 디지털 혁명으로 내달리고 있는데, 교육은 여전히 초기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에 묶여있다. 이른바 주류 언론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빠져 자신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온갖 반언론적 행태를 서슴지 않는다.

특권 독점층의 자본 권력 카르텔 탓
기득권 재생산 교육체제부터 개혁을


지금의 작은 성공에 매몰되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성찰을 외면한 채 기득권 구조와 체제에 갇혀 있다면 유럽 사회의 패망이 곧 우리의 역사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체계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교육을 다시 세우고 지성적 성찰을 위한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산업화 시대를 위한 교육 체제를 폐기하고, 포스트휴먼시대의 교육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입시교육을 폐지하고 교육 자체를 미래 세대의 것으로 바꿔야 한다.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이를 가로막는 집단을 해체해야 한다. 특권을 재생산하는 대학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어쩌다 맞이한' 선진국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교육부와 사학재단의 개혁 없이 이 모든 일은 불가능하다. 기득권을 혁파하지 않은 채 미래 사회를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미래를 지향하는 교육과 지성의 자리를 만들지 못하면 맹목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