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이전의 일, 아득한 옛날의 일이라고 하겠지만 필자에게는 이게 옛날 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요즘 대통령 선거 시즌이다. 그러다 보니 각종 '개혁' 공약이 등장하는 가운데 급기야 행정고시를 없앤다는 말들도 나왔다. '고시'라는 말이 붙은 게 사법고시, 외무고시가 있었지만, 바뀌거나 없어졌고 '행시'만 남은 것이, 그마저도 없애자는 것이다.
요즘은 공약이 난무하는 대선 시즌
'행시'마저 없애겠다는 말이 있다
한편으로는 맞다. 20대 어린 나이에 '고시 패스'라고 해서 5급 공무원으로 나서는 게 바로 이 고시다. 시험 하나 잘 봤다고 경험 많고 실무 잘하는 7급이나 9급들 위에 앉는 게 좋다고만 할 수 없다. 능력을 쌓고 성실히 일하면 누구나 진급할 수 있고 더 나은 위치에 갈 수 있으면 나쁠 일은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행시마저 없어지면 이제 '없는 집' 자식들은 어떻게 빛을 볼 수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행시마저 없어지면 '개천에서 용 났다'는 이야기는 이제 '고어사전'에서나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이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하지만 결코 그렇지 못한 것을 여러 곳에서 본다.
예를 들면 중·고등학교의 '수시평가'만 해도 그렇다. 학생도 힘들고 교사들도 힘든 것 말고 무슨 실효성이 있나. 대학을 성적순으로만 들어가지 않게 하자, 사회봉사도 할 줄 알고 책도 좀 깊고 넓게 읽은 인재를 뽑자는 게 수시평가요, 수능시험이다. 그러나 어디 뜻대로만 되었던가? 국어능력 평가는 국어교과서, 문학교과서에서 오히려 멀어지고 EBS 교육방송만 살찌게 하지 않았던가? 사교육 폐해를 줄인다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정말 학원들은 없어졌나?
무엇이든지 평가는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그러면서 능력을 넓게 볼 수 있는 것일수록 좋다. 그래서 옛날의 '학력고사'가 나쁘지 않았다. 사법고시도, 외무고시도, 행정고시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무슨 일이든 명암이 있게 마련이다. '없는 집' 자식도 교과서를, 법전이며 뭐며를 열심히 파헤치면 타고난 신분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필자의 감각으로는 로스쿨이든, 외교관후보자선발시험이든, 의전원이든, 대학수능시험에 이어 '있는 집' 자식들을 위한 잔치 같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의전원 같은 것은 없어지는 추세라고도 들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틀, 경향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5급 공무원출발 문제일 수 있으나
없는집 자식 '신분상승 길' 막는 셈
누구에게나 길 열려있는 사회 중요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하며 한국사회는 빈부격차가 더욱 극심해졌다. 지난 20년 사이의 변화지만 최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자연히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느냐에 시선이 집중된다. 재난지원금 같은 것도 '가난구제'와 '사회복지' 같은 명분에서 시행된다. 양도소득세니, 보유세니 하는 주택관련 각종 세금을 늘린 것도 이를 해결해 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경제개혁이나 입법만큼이나 절실한 것은 오히려 다시 한 번의 신분혁명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이 각자의 능력을 공평하게 길러주고 또 적절하게 평가한다면, 그리고 '관리'가 되는 길도 공평하게 열려 있다면 이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명분을 달고 각종 시험을 없애고 나온 것들이 기득권층의 신분 세습 장치 역할이나 한다면 국민들은 세상을 정의롭게 보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이 정말 절망하는 것은 내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구조의 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경제혁명도 좋지만 뭣보다 신분혁명을 이루자고 생각한다. 경력을 중시하고 다양한 충원 루트를 만들어 공무원 사회를 내실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에게나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공무원 사회의 다양성은 무엇보다 다양한 계급, 계층, 성별의 다양성이어야 할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