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001000430300020191

노익장(老益壯)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역량을 발휘하는 노인을 뜻한다. 중국 후한서 마원전에 나오는 노당익장(老當益壯·늙음에 당해 더욱 씩씩하다)에서 유래했단다. 후한 광무제 때 반란이 일어나자 대장군 마원(馬援)이 진압하겠다 나섰다. 광무제가 늙은 마원의 출정을 말렸다. 이에 마원은 갑옷 입고 말을 탈 수 있다며 출정을 강행하니, 황제가 감동했다 한다.

최근 문화계에서 노익장들의 잇단 활약이 화제다. 지난달 31일 막을 내린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72세의 배우 정동환이 무대를 지배했다. 1, 2부 총 6시간짜리 공연은 노년의 도스토예프스키가 자신의 소설 이야기를 들려주는 극중극 형식이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등 1인 5역을 연기했다. 무대 인생 50년의 관록만이 감당할 수 있는 그의 열연에 관객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이에 질세라 배우 이순재가 예술의전당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으로 관객을 만나는 중이다. 1935년생이니 만 나이 86세인 노배우는 인간의 탐욕과 위선이 빚어낸 비극의 주인공에 더할 나위 없는 적역이다. "이제야 리어왕을 연기할 때가 온 것 같다"던 자신감을 3시간이 넘는 무대에서 증명하고 있다. 21일까지 공연이 개막 일주일 전 마감됐다니, 86세 리어왕 이순재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짐작할 수 있다.

현역 최고령 연예인 송해는 오는 18일 개봉하는 '송해 1927'에 출연한다. 자신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니 주인공은 당연히 송해다. 1927년생인 그의 인생 100년은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이자 문화사이다. 바닷길을 건넌 실향민이라고 '복희'라는 본명 대신 '해(海)'라는 예명으로 살아온 그는 악극단 단원으로 시작해 영화배우, 코미디언을 거쳐 1988년부터 '전국 노래자랑' 진행자를 맡아 국민 MC로 활약 중이다. '송해 1927'을 통해 그의 인생에 새겨진 격동의 1세기를 공감해볼만 하겠다.

어디 문화계뿐일까. 여전히 현역인 101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를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지혜로운 노인은 많다. 고령화 추세로 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노익장들은 더욱 늘어날 테다. 불행한 건 노익장을 박대하는 사회풍토이다. 여전히 나이순으로 정년을 결정하고, 은퇴하면 싸구려 공공 일자리뿐이다. 노익장을 사장시키는 것만한 낭비는 없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