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렸던 제26차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큰 진전 없이 지난 12일(현지 시각) 폐막했다. COP는 지구 온난화를 저지하기 위한 전 지구적 협의체이다. 1997년 COP3에서 6가지 온실가스배출량을 줄이기로 한 교토의정서를 채택했지만 실행계획없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2015년 COP21에서 교토의정서를 폐기하고,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파리협정을 197개국이 합의해 발효시킨 배경이다.
약속대로라면 파리협정 합의국들은 올해 COP26에서 2030년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회원국 앞에서 발표하고 약속해야 했다. 하지만 중국, 인도 등 탄소배출 대국들의 비협조로 흐지부지됐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만 2030년 탄소감축 40%와 2050 탄소중립(탄소배출 0)을 약속했다. 국제사회에선 강대국의 탄소 이기주의가, 국내에선 문 대통령의 낭만적인 탄소감축 독주가 도마에 올랐다.
탄소의 역습에 인류가 속수무책이다. 태평양 섬나라 투발루 사이먼 코페 외교장관은 수중 연설로 COP26 참가국에 경종을 울렸다. 국토의 평균 해발고도가 2m에 불과한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2009년엔 같은 처지인 인도양의 몰디브가 수중각료회의를 열었고, 네팔 정부 각료들은 벌벌 떨며 에베레스트 산상회의를 강행했다. 이듬해엔 몽골이 고비사막에서 각료회의를 열었다. 온난화의 위기를 강조하려는 퍼포먼스였지만, 강대국들은 귓등으로 듣는다.
반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가들의 탄소중독은 치유 불가능 수준이다. 탄소 배출 없이 유지하기 힘든 산업과 에너지 생태계에 갇힌 탓이다. 중국은 탄소 감축을 빌미 삼아 호주 석탄 수입을 금지했다가 호되게 당했다. 석탄 부족으로 발전량이 떨어지자 대정전이 발생했다. 중국의 석탄 부족이 전 세계 요소수 대란을 촉발했다. 전 세계 석탄 생산량이 줄자 러시아가 천연가스 밸브를 틀어쥐고 유럽을 쥐락펴락한다. 가스값이 폭등하자 난방 난민이 쏟아진다. 유럽의 올겨울은 혹독할테다.
이러다간 세계가 탄소로 죽는 나라와 탄소중독에 빠진 나라로 분열되는 탄소 냉전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느리지만 전면적이고 고통은 지루한 최악의 냉전이다. 탄소의 역습이 무섭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