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도 시대·장소·연령별 달라
발전·합리성 고려 선호 미래상
가변적·불확실 탓 예측 어려움
개인이 아닌 단체, 기업, 정부조직, 사회, 국가 미래상의 변화를 살펴보면 흥미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어떤 조직에 속해 있으면 그 조직의 표어, 이념, 목표, 비전 등을 볼 수 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창업자의 의지가 강하게 실린 비전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공익을 목표로 하는 조직은 그 기관의 성격에 따라서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 좀 더 시야를 넓혀서 국가의 미래상을 살펴보자. 여러분은 우리나라의 미래가 '이런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50년 후에 대한민국의 미래상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해보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5천만 국민마다 모두 다른 미래의 모습을 그릴 것이기 때문에 미래의 모습은 5천만 개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미래의 모습을 묶어서 분류해 보면 그 숫자를 줄일 수 있고 대다수 국민이 선호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 이러한 미래상을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선호 미래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정하고 모든 국민이 잘사는 세계 강국 대한민국'이라는 미래상은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이 바라는 선호 미래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이 바라는 희망 미래가 꼭 달성 가능한 미래나 바람직한 미래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1933년 독일의 히틀러가 집권해서 그의 선동으로 그린 독일의 미래는 대다수 독일 국민이 동의했던 미래지만 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현재의 국가역량, 우리나라 발전 가능성, 합리성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가 달성할 수 있는 미래상을 '바람직한 미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직한 미래는 좀 더 달성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역사 이래 최전성기 근접
퀀텀점프 희망 미래 그려보자
희망 미래상이나 바람직한 미래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러한 미래가 꼭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가변적이고 미래의 불확실성은 높고 사회의 복잡성은 날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왜 예측해야 할까? 한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커다란 역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역량을 결집하지 못하고 사회가 분열된다면 우리가 그리는 장밋빛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 사회가 파멸로 가는 미래를 '피하고 싶은 미래', 즉 '회피 미래'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피하고 싶은 미래를 막고 희망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지금 바로 해야 한다. 미래는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행동에 좌우되기 때문에 우리 행동의 작은 변화가 증폭되어 미래의 모습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5천년 역사 이래 최전성기에 근접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퀀텀 점프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높은 단계가 무엇인지 상상해 보아야 한다. 많은 정책기관들이 여러 가지 미래상을 제시했지만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대한민국의 '희망 미래상', '바람직한 미래상'이 제시된 적이 거의 없다. 많은 국민이 희망하고 우리나라가 성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의 미래를 한 번쯤 설정해 보고 많은 국민들이 그러한 미래상을 상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 미래상을 조사하거나 국민 참여 워크숍을 열어서 많은 국민이 공감하는 우리나라의 희망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퀀텀 점프하기 위한 한 단계 더 높은 '대한민국의 미래상'은 무엇일까?
/이재우 미래학회 회장·인하대학교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