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약 99%(무게 기준)가 무역항을 통해 이뤄진다. 유류를 포함한 원자재부터 소비재까지 거의 모든 물품이 항만을 통해 들어오고 나간다. 항만 인프라는 국내 기업들의 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국가 경제를 뒷받침한다.
항만은 역할만큼이나 보안의 중요성이 크다. 항만은 국내로 불법·위해 물품이 반입되는 것을 차단해야 하는 곳이다. 인천항을 비롯한 국가 주요 무역항이 가장 높은 등급인 가급 국가보안시설로 지정된 이유다.
보안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인천항이지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인천의 한 화물차 기사는 "화물차만 타면 출입증 없이도 인천항 컨테이너 터미널 어느 곳이든 돌아다닐 수 있다"고 강조했고,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경인일보가 지난달 22일 취재한 결과, 인천항 컨테이너 터미널은 RFID(무선 주파수 식별) 방식으로 사전 등록 차량 여부만 확인할 뿐 탑승자에 대한 제재는 없었다.
누군가 문화재 등 반출 금지 물품을 내다 팔려고 하거나, 마약류 등 위험 물품 반입을 시도했을 때 막을 수 있는 제재 장치가 없는 셈이다. 경인일보 지적(10월27일자 1면 보도=화물차는 검문 패스… 보안 뚫린 컨테이너 터미널) 이후 불시 검문검색이 이뤄지고 있다.
컨테이너 1대분 보안료 86원 책정
독일 59배·미국 7.6배 엄청난 차이
철저한 보안은 촘촘한 시스템, 숙련되고 충분한 인력 등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인천항의 '허술한 보안'은 현장과 규정의 괴리, 부족한 인력, 보안을 담당하는 기업의 옅은 책임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란 지적이 나온다.
인천항 컨테이너 터미널이 경인일보 보도 이후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지만, 항만 보안을 확보하기 위해선 보안 체계 전반을 다시 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항만 보안과 관련해 '비용'은 문제의 핵심으로 꼽힌다. 현행 제도에서는 민간 기업인 터미널 운영사가 항만 보안 담당 인력을 채용하고 운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 비용은 화주와 선사로부터 '보안료'라는 이름으로 받는다. 보안료는 항만 보안에 투입되는 비용의 30%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보안료는 항만공사와 정부가 징수해 시설 소유자(터미널 운영사)에게 배분하며, 기준 가격은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대분)당 86원으로 책정돼 있다.
"국가중요시설 정부 나서야" 지적
불시 검문검색 보다 근본책 절실
이는 해외 항만과 비교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게 항만 업계 설명이다. 독일은 한국의 59배, 미국은 7.6배에 이른다. 이 때문에 보안료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수년 전부터 이어졌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더욱 주도적으로 항만 보안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터미널 운영사는 민간 기업이기 때문에 '자산 보호'의 개념으로 보안 요원을 운용하는 측면이 있다. 인천의 한 터미널 운영사 관계자는 "항만은 국가 중요 시설인데 왜 민간 기업이 보안을 책임져야 하느냐"고 하기도 했다.
보안 인력 확충도 중요하다. 현행 제도는 출입구에 2명 이상을 상시 배치하게 돼 있는데, 인천뿐 아니라 대부분의 컨테이너 터미널은 1개 게이트에 5~10개의 차로가 있다. 부족한 보안 인력 탓에 검문검색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최근 '보안 구멍'에 대한 지적이 일면서 불시 검문검색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인천항에 앞서 화물차 전담 검문검색 요원을 배치한 부산항 컨테이너 터미널의 한 보안 요원은 "현재 검문검색이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적은 인원이라 제대로 된 검문검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