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류는 원래 중국에서 생긴 말이다. 중국의 '인민일보'에서 한국대중음악과 드라마에 열광하는 현상을 한풍(韓風), 한조(韓潮)라 비판하면서 이에 열광하는 자국민을 '하한쭈(哈韓族)'라 지칭하고 이 모든 현상을 총칭하여 '한류'라 명명했던 것이다.
때마침 불어 닥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1993년부터 한국정부는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문화가 가진 경제적 부가가치와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가령 1995년 김영삼 정부의 '영화진흥법'이라든지 1999년에 제정된 '문화산업진흥법' 등이 단적인 예다. 안팎의 조건이 잘 맞아떨어지면서 한류는 동아시아의 차원을 넘어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디지털 플랫폼들을 기반으로 마침내 한류(the Korean Wave)라는 초국가적 대중문화로 도약했다. 1990년대 후반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번진 드라마들이 한류 1.0이라면 디지털 플랫폼들을 기반으로 한 최근의 콘텐츠들은 한류 2.0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속 문화산업 이끄는 내공 축적
기득권영향 없이 실력 갖춘 콘텐츠만 생존
그러면 한류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며 세계를 주도하는 이 압도적 현상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대략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다. 첫째는 지역적인 것과 글로벌한 것을 잘 융합한 혼종성(hybridity), 둘째는 강한 호소력과 보편성, 셋째는 치열한 경쟁 시스템에서 다져온 우리 문화산업의 적응력과 응용력 등을 꼽을 수 있다.
첫째와 둘째가 콘텐츠의 영역이라면, 세 번째는 시스템과 문화환경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치열한 경쟁시스템에서 형성된 적응력과 응용력이다. 우리 대중문화가 이러한 역량을 갖춘 것은 바로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거나 인기를 얻지 못하면 바로 퇴출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우리 문화산업들은 대중이라는 공포와 정면에서 마주하면서 특유의 내공을 축적해 왔거니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야말로 권력이나 기득권 세력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영역이기에 정말 실력이 있고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만 대중의 선택을 받고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공정과 사회적 정의가 작동된 것이었다. 여기에 사회에 나와도 딱히 갈 곳 없는 실력 있는 청(소)년 인재들이 문화산업과 연예분야에 유입되면서 우리 문화가 이 같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한류문화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만들어낸 빛이요, 꽃이다.
일시적 성공 도취 말고 '한류 3.0' 준비해야
국악 등 고급예술 지원·투자에도 관심 필요
이제 우리 문화산업은 한류 2.0을 넘어 한류 3.0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일시적인 성공에 도취하지 말고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보편성을 확보하는 한편, 구미지역과 중국 등 높은 잠재력을 지닌 국가들과의 대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장기지속성과 경쟁력을 갖춰나가야 한다. 이와 동시에 대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분야들, 가령 아마추어 생활예술이라든지 국악이라든지 고급예술에 대한 지원과 투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격(國格)을 갖추는 것은 대중문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부 한류문화 콘텐츠의 성공신화에 도취되어 자칫 전통문화·생활문화·고급문화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가면 안 된다. 문화의 경쟁력과 문화생태계는 문화의 다양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